Blog Archive

레이블이 book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book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1-06-01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신현호 저.

제목이 약간 도발적이다. 너희들은 감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인가? 이 책을 집어든 것이 대략 1년 쯤 전이었던 것 같다. 한참 데이터 관련 책들을 모두 읽어보자고 작심하던 때였다. 박형준의 『빅데이터 빅마인드』, 스타벅스의 데이터 과학자 차현나가 쓴 『데이터 읽기의 기술』,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연세대 산업공학과 임춘성 교수가 쓴 『멋진 신세계』,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가 쓴 『증거의 오류』, 한양대 경영대학 장석권 교수가 쓴 『데이터를 철학하다』 , 구글 데이터 과학자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 등을 보았다.

그 중에 증거의 오류와 데이터를 철학하다는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집어던졌다. 가장 재미있게 본 두 권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와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였다. 전자는 구글의 검색 데이터만 가지고도 많은 사회 현상을 설명/예측할 수 있는 경제학자 출신 데이터 과학자의 통찰이 빛났었다. 후자의 책 역시, 경제학자 출신의 데이터 과학자가 데이터로 설명력을 높여주는 여러 가지 인간 집단의 특성과 사회적인 현상을 바라보는 틀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고 인사이트를 주었던 책은 『빅데이터 빅마인드』, 데이터 과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 잔뜩 기대했지만 별로 기대에 차지 않았던 책은 『데이터 읽기의 기술』이었다.

경제학자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관심사들이 결국 심리학자들의 관심사와 얼마나 중첩되는지 엿보게 된 것 같다. 세상 일에 관심을 갖는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이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찰한다. 그 데이터는 결국,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을 집합적으로 모은 것이고, 그 안에는 인간 행동의 원리, 심리학의 관찰과 실험 데이터가 들어있다. 마치 데이터라는 다리를 통해, 세상과 인간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여러 학문들이 만난다고나 할까. 

책은 상당히 재미있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생각해보자.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곳에서는 다음에도 당첨자가 또 나올까? 지금까지 슛을 많이 넣은 농구 선수는 다음 번에  슛을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일까?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 확률은 낮아질까? 전염병 예방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사망할 확률보다 전염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은데 왜 어떤 사람들은 백신을 안 맞으려고 할까? 유전무죄는 실제 법정에서 판결 결과로 나타날까? 딸을 가진 아빠들은 더 페미니스트 성향을 갖게 될까? 국회의원이나, 이사회에 여성 할당제를 실시하면 능력이 안 되는 여성들이 더 등용될까? 월드컵 기간에는 심장 마비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아질까? 1인1투표를 통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동등한 참정권을 갖게 된 것일까? 왜 백화점/인터넷 할인가는 9,900원과 같은 9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가? 잘 생긴 사람이 선거에서 뽑힐 가능성이 더 높을까? 정부 정책은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까? 담배세를 얼마나 올려야 국민 건강에 이득이 될까? 중년의 위기는 실존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재미난 질문들에 대해서, 단순히 주장이나 당위가 아니라, 데이터를 증거로 답을 찾아간다. 그 데이터들은 때로는 통제된 실험실의 데이터이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응답 데이터이기도 하고, 시장이나 주가를 분석한 데이터이기도 하고, 오랜 기간 축적된, 또는 추적하거나, 관찰한 데이터이기도 하다. 

사람들에게는 휴리스틱(heuristic, 발견법)이라는 간편하고 훌륭한 의사결정 기제가 있다. 그러나 휴리스틱은 종종 많은 편파와 오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증거와 데이터에 기반해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세상의 다양한 데이터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집하고, 끌어와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모범 사례들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2021-04-25

가짜 뉴스의 심리학

 

가짜 뉴스의 심리학: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믿기 쉬운 (박준석 지음)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극단적인 진영간의 대립은 전례없이 심화되었다. 그리고 그런 진영의 대립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가짜 뉴스를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왜 간단한 팩트 체크도 하지 않고, 가짜 뉴스에 빠져드는 것일까? 지능이나 지식이나 판단력이 부족해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런 위험성은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에서, 적나라하게, 심리학과 데이터 과학에 기반하여 보여준다.

가장 널리 알려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에 부합하는 정보만 걸러서 처리하는 것인데, 소셜 미디어의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을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그런 편향이 더 강해지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한계가 언급된다. 인지적 자원을 쓰기 싫어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성향, 다니엘 카네만이 말했던 시스템 1과 시스템 2 사고 경로, 기계 학습에서 말하는 과적합(overfitting)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음모론, 동기화된 논증(motivated reasoning),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 거짓 진실 효과(illusory truth effect),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에 나오는 사전/기저 확률을 무시한 판단 등등등. 이제는 꽤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 가장 점수가 높았다던 MIT 학생들도 100점 만점에 73점의 점수밖에 획득하지 못했다는 CRT 문제(cognitive reflection test)를 주위 친구들에게도 던져보고 싶다. 깊이있는 사고를 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것 필링(gut feeling, 직감?)으로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 

책에서 나온 4·15 부정선거 음모론의 백미는 동기와 정서가 강력하게 작용하였을 때, 소위 말하는 전문가 또는 유사 전문가들도 가짜 뉴스 생산에 일조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선거에서의 지역별 득표율을 마치 주사위를 여러 번 던지는 독립 사건처럼 취급하여, 2의 424승분의 1의 확률로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은 일이 발생했다는 물리학자의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비슷한 논리의 부정 선거 음모론은 진보 진영에서도 일어났다. 지금까지 일어난 과거의 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만들 때에, 현실에 없는 전제를 너무 많이 깔고, 복잡하게 튜닝하는 것이 오히려 설명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미래에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비현실적인 전제에 기반한 음모론, 결국에는 가짜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것! 지식 수준이 높은 사람들도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저자는 말미에 전문가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미국에서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 소장이 코로나 음모론과 백신 음모론으로 어처구니 없는 공격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전문성 또는 전문가에 대한 신뢰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전문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여 생기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도 있었다. 내 생각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일인데, 손으로 책을 읽는다는 초능력 소녀에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속아넘어가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겠다고 달려들었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고, 그것의 절정은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이 그 소녀의 뇌파를 측정하면서 실제 책을 읽을 때의 뇌파와 동일하게 나온다며 놀라워하던 일이었다. 두 번째는, 황우석 사건이 발생했던 초기에,국보급 과학자였던 황우석에게 내가 감히 어떻게 도전하느냐며 그를 옹호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국가적인 이익을 앞세워 황우석을 추종하는 경향이었다. 

누구나 가짜 뉴스에 속아넘어가고, 진영 논리와 편향,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나는 특히 사람에 대해 판단할 때 조심, 또 조심한다. 회사에서는 인사 평가라는 그럴듯한 제도를 핑계삼아 사람을 끊임없이 평가한다. 그런 평가는 인간의 모든 오류와 편파가 들어갈 구석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초기에 저평가했던 사람이 나중에 알고 보니 보석같은 존재였던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최대한 유보한다. 특히나, 평가나 판단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신뢰하거나, 전적으로 의심하는 양 극단을 조심하면서, 그 사람을 섣불리 좋은 사람, 또는 못 믿을 사람으로 낙인찍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 수록, 사람에 대한 판단의 영향력과 댓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와 검찰 개혁,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속에서 동일한 사건과 사안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시각이 충돌하였다. 나의 소셜 미디어 친구들은 나와 유사한 진영에 속해있고, 비슷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기존 진보 진영에서 이 사안을 계기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 극단의 시각이 첨예하게 싸우다보니, 쉽게 내 편과 네 편으로만 편가르기가 되고, 당신의 의견은 내 편이냐, 아니냐로만 단순화되는 것이 참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진실 앞에 겸손해야 함을 느낀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틀릴 수 있고, 나도 인간의 편향과 오류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으며, 새로운 사실 앞에 나의 믿음을 바꿀 수 있고, 진실은 아직 모른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2021-04-10

고스트 인 러브

고스트 인 러브 책표지
고스트 인 러브 책표지

나는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0년 말에 개봉되어, 엄청난 흥행 실적을 낸 영화인데, 서울에 유학온 나는 대학 시절 '영화관'이란 걸 가보지 못했다. 서울에 와서 초기에 두 가지가 낯설었다. 하나는 지하철이라는 서울에만 있는 교통 수단! 다른 하나는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는 영화관! 그런 저런 핑계와 그 당시 시대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무튼 영화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하도 많이 나온 음악 언체인드 멜로디는 많이 들어봤던 것 같다.

프랑스의 대중 소설가 마르크 레비의 『고스트 인 러브』를 전자책으로 고르면서, 혹시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고스트가 되어서야 만나게 되는, 어쩌면 뻔하고 진부한 그런 이야기! 이렇게 짐작을 했지만, 그런 뻔한 사랑 이야기를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미권이나 미국, 캐나다가 아닌 유럽, 프랑스 작가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주인공 토마는 피아니스트이다. 작품에서 몇 개의 피아노곡이 나온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너무나 유명한 곡이고, 슈베르트의 즉흥곡도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언급된다. 빡빡한 연주 스케쥴에 묻혀 사는 피아니스트의 삶의 단편을 조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연주자들이 실은, 밥먹는 시간 빼고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하는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좀 의아했다.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은 아버지의 유령!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나? 싶더니, 아버지의 엉뚱한 요구는 아버지가 못 다한 사랑(그것도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을 살아있는 아들에게 이룰 수 있게 부탁하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살고, 빡빡한 연주 스케쥴에 묻힌 피아니스트 아들은 아버지의 엉뚱한 부탁으로 며칠 내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급박하면서도 리듬감있게 진행된다.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점은 바로 유럽식 대화이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화, 어머니와 아들과의 대화,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간의 대화이다. 전에 보았던 일본 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화 방식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장황하지만, 유머가 있고, 외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직설적인 대화!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원래 원작자가 쓴 말의 뉘앙스를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우리말 같으면서도 유럽식 리듬감과 정서가 느껴지는 대화를 엿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가 사랑했던 그녀를 자식은 어떻게 보게 되는가?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미묘한 사람들간의 만남과 관계 맺음, 거기에서 오는 섬세한 감정들에 같이 동화되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환호를 같이 느끼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마르크 레비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아뿔싸! 작년엔가 읽었던 『그녀, 클로이』도 레비의 작품이었다. 뉴욕 맨하탄의 오래된 고급 아파트와 거기에 사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주변 풍경이 살아 움직이듯 묘사가 되어 있어서 나는 당연히 미국 작가의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2021-04-06

변두리의 삶과 변두리 로켓

변두리 로켓 책 표지 변두리 로켓 책표지

『한자와 나오키』로 유명한 일본 대중 작가 이케이도 준의 『변두리 로켓』을 읽었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원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받은 피터 홀린스의 『어웨이크』를 읽다가 생각보다 내용이 빈약해서 집어던져 버리고, 재미있는 소설을 찾다가 무심결에 고른 책이었다. 

일본의 한 중소 기업 이야기가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그 중소기업의 대표는 예전에 실현하지 못한 로켓 발사라는 원대한 꿈을 가진 연구자 출신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현실은, 대기업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생존의 위협을 극복해야 하는 날마다 새로운 위기의 연속이다. 대규모 부품 구매자였던 대기업이 하루 아침에 구매를 끊어버린다든지, 중소기업이 가진 기술을 탐내고 중소기업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특허 소송을 제기해서 못살게 군다든지, 부품 공급을 받기 위해 과도한 심사 절차를 요구한다든지 하는 깡패같은 "갑"들의 행위들이 실감있게 그려진다.

그런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씩 하나씩 해결되가는 과정에, 회사 구성원과 이해 관계자들과의 갈등도 너무 생생하다. 일본의 회사 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는데, 권위주의와 보신주의, 권한 위임이 잘 안 되는 위계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어쩌면 한국의 전형적인 회사들과 그렇게 닮았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사람은 누구나 변두리에 산다.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의 중심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개인으로서는 세상의 변두리에 머무르고 있다. 변두리와 중심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스스로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면, 참 우울해진다. 나도 한 때에는 어떤 분야에서 세상을 이끌어간다는 자부심(?) 또는 자만(?)이 가득차 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은 변두리에 내몰렸다고 생각하면서, 충만하던 자신감의 자리는 대인 기피로 채워지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소화하고,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을 유지하고 싶은 요즘의 나에게는 어쩌면 코로나19라는 역대급 재앙이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 적당히 팬데믹을 핑계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멀리 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속의 중소기업인 쓰쿠다 제작소의 대표는, 연구자로서 한 번 실패한 삶에서 변두리 중소기업으로 밀려왔지만, 본인이 품고 있던 꿈과 회사를 이끌어가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버리지 않았다. 나도 꿈을 버린 것은 아닌데... 문제 해결해가는 과정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쓰쿠다 제작소의 큰 기여로 로켓 발사 카운트 다운이 10, 9, 8, 7, ... 들어가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심장이 쿵쾅거렸고, 마침내 로켓이 하늘로 쏘아올려질 때, 현실의 일인 것처럼 눈물이 났다. 그런 눈물을 흘릴 순간과 사건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포기하지는 말자...고 혼자말을 해본다.



2021-03-21

잘 쉬는 기술

 회사의 동료들이 한참 나가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뻑뻑할 때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잘 쉬는 기술』을 읽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힘들면서도, 나는 유능해서 그런 것 쯤이야 다 할 수 있다는 자만도 자라고 있었다. 그러다 막상 좀 여유 있는 시간이 되면, 진정 휴식을 취한다기 보다는 그냥 늘어져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아까웠다. 

잘 쉬는 기술 책표지
잘 쉬는 기술(클라우디아 해먼드) (출처: 교보문고)

그래서 정말 주어진 시간만이라도 잘 쉬고, 재충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잘 쉬는 기술"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기술" 제목이 붙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상 그런 기술을 따라하거나 적용해보려면 안 되는 이유가 100가지는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목과 달리, 이 책은 기술을 전수하거나 강요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었다. 전 세계 1만8천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10가지 휴식에 대한 사색과 과학적 발견들을 정리해서 보여준다. 만약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면, 책에서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제공해준다. 

  • 마음챙김 명상은 나에게도 좋은 효과가 있을까?
  • 모짜르트 음악은 듣는 사람들에게 정말 특별한 효과를 내는가?
  •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뇌가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란 무엇인가?
  • 소파에 파묻혀 TV만 보는 것은 정말 해로운 것인가?
  • 자연(nature)은 정말로 치료나 치유의 효과를 주는 것인가?
  • 독서를 하는 동안 눈과 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2018-12-14

공간에 눈을 뜨다: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저)를 읽고

유현준 저. 어디서 살 것인가 책 표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를 참 재미있게 보았다. 나는 심한 길치이고, 공간 감각도 둔해서 건축의 세계는 나와는 참 인연이 없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주요 장면들은 사실 공간과 얽혀 있는 것들이 많았다. 비가 오면 걸레로 물이 나가는 입구를 틀어막아 물놀이했던 한옥집의 마당, 따사한 햇볕과 함께 기억되는 한옥집의 마루, 동네 친구들과 자치기하고 구슬치기 하던 흙바닥 골목길, 초여름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했던 주택가, 그리고 서울의 자취집에 가는 정다운 숲길과 같이 공간에 대한 기억과 정서가 깊게 남아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삶과 얽혀 있는 공간이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인가? 이 책에서는 우리 주변의 공간과 도시, 인간의 삶, 과거의 역사, 미래, 기후, 기술의 발전, 사회와 정치 이야기를 버무려서 재미있게 풀어낸다.

처음에 학교 건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나라 학교 건물들은 영락없이 교도소와 비슷하고, 학교 운동장은 사실 군대의 연병장과 비슷하다는 저자의 지적에 아하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학교는 획일화된 건물에서 똑같은 공부만 하거나, 아니면 흙먼지 날리는 연병장 같은 운동장에서 축구만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학생들이 도란도란 모여서 이야기하고, 어울리고, 산책하고, 작은 놀이를 하려 해도, 지금의 학교 건물과 운동장은 오직 획일화된 교실 수업과 몇몇 남자들에게만 즐거운 축구 외에는 다른 것을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나는 축구를 잘 못 했다. 아니 심하게 못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생일날에 친구들이 나를 즐겁게 해준다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하자고 했을 때 너무 싫었다.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남자이니 어쩔 수 없이 축구를 해야 할 때가 가장 괴로웠고, 그런 전체주의적 상황이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점과 선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공적인 정주 공간(머무르는 공간)이 줄어든 요즘 아이들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낼 일이 거의 없다. 낮은 천정의 아파트와 천정 높이가 정해진 학교를 벗어나면, 학원에 가기 위해 머리가 닿을 듯한 봉고차를 타고, 다시 천정으로 막힌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봉고차를 타고, 아파트에 와서 꽉막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로 들어가면 4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이런 변화하지 않는 실내에서의 시간들로 꽉 차 있는 상태에서 어떤 공간이 과연 의미있는 경험과 기억으로 남겠는가? 그들에게 변화하는 것이란 오로지 TV와 컴퓨터, 스마트폰 속의 화면 뿐이다. 그러니 변화하지 않는 답답한 여러 실내들(점)들의 단편적인 경험 속에서 신나고 재미있는 변화의 경험은 스크린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요즘에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를 가도 주로 실내 공간이다. 대형 쇼핑몰, 식당, 키즈 카페 등등등. 그런데 그런 곳에 가기까지는 자동차를 이용한다. 아이에게는 아파트 안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 가서, 꽉 막힌 차를 타고, 모든 것이 끊긴 채 갑자기 대형 쇼핑몰의 비슷비슷한 주차장으로 장면이 바뀐 것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조금씩만 다른 키즈 카페 실내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요즘 아이들은 놀이터에 가기까지, 엄마, 아빠와 함께 걸어가며, 주변의 나무가 바뀌고, 풍경이 서서히 바뀌고, 다양한 모습의 상점들이 있고, 넓거나 좁은 길들이 있다가, 어디를 돌아, 어디를 지나 드디어 놀이터에 도착한다는 그런 연속적인 경험을 하기 어렵다. 단지 집, 차, 실내 키즈카페와 같은 불연속적인 공간들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도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면 항상 무언가 아쉽다. 연속적인 경험이 끊기기 때문이다. 길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나는 정말 길을 좋아한다. 길을 걸으며 서서히 바뀌는 풍경과 그 길의 고유한 정서를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공간 감각이 둔한 것은 아닐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공간이 별로 없어서 내가 공간에 대해 둔해진 것은 아닌지…

뉴욕에 갔을 때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뉴욕에서 놀란 것은 서울처럼 넓은 대로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건물은 높은데, 8차선, 16차선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서울과 달리 뉴욕의 길은 2차선 길이 상당히 많았다. 한편으론 답답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2차선 길들을 따라 풍경이 참 많이 변했다. 길거리 음식이나 기념품을 파는 크고 작은 가게, 센트럴 파크, 뮤지컬 극장, 아리랑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초상화를 그려주는 거리의 화가와 같이 8차선 대로에서는 시끄럽고, 바빠서 존재하기 어려운 그런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펼쳐졌다. 그래서 비록 도심지의 거리이지만 거리의 모습과 연관되어 그 때의 경험들이 뇌리에 박혀있다.

건축물과 도시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건축과 도시는 다시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책의 저자는 화목한 세상을 꿈꾸며 건축을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설계된 공간(작게는 주택에서부터 크게는 도시, 공원, 큰 집합 건물, 도로, 다리 등을 포함)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고, 나같이 둔한 사람에게도 공간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 더 뜨게 해 준 좋은 경험을 선물해준 책이었다.

덧붙이는 말: 요즘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함께 걸어 좋은 길”이라는 노래가 있다. 문구점을 지나서, 장난감집 지나서 학교 가는 길, 너랑 함께 가서 좋은 길… 과 같이 시작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요즘 아이들이 과연 이런 길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할 거리가 있을까?

2011-01-17

더 뉴 소셜 러닝(The New Social Learning)을 읽고

소셜 러닝 책표지더 뉴 소셜 러닝(The New Social Learning)은 아마존에서 네 번째로 구매한 전자책이다. 한국 회사들이 해마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을 컨퍼런스에 보내는 미국 교육훈련 협회(ASTD, American Society for Training and Development)의 최고 경영자 토니 빙햄(Tony Bingham)과 컨설턴트인 마르샤 코너(Marcia Conner)가 쓴 책이고 ASTD가 출간하는 책 중에 2010년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되었다.

소셜 러닝(사회적 학습) 이론은 원래 심리학에서 앨버트 반듀라(Albert Bandura) 등이 주장한 학습 이론인데, 요즘에는 소셜 러닝이라고 하면 실용적으로 소셜 미디어나 협업 툴을 이용한 집단 학습의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회사 밖에서 소셜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기업 내에서의 소셜 미디어에 대해서는 아직 호의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은 것 같다. 소셜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을 학습이라고 하면, 기존 기업 교육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통제하고 주도해왔던 회사 중심의 교육 서비스를 위협한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정보보안 부서에서는 회사에서 꺼려하는 정보가 여과 없이 내부에서 유통되거나 외부로 새어나갈 것이라고 걱정하고, 사내 법률가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이디스커버리(e-discovery)와 같은 법률적인 위험성을 경고하고, 조직문화 담당자들은 민감하고 검증되지 않은 소식이 일파만파 퍼져나갈 것이라고 걱정한다. 기존에 지식 경영(knowledge management) 활동을 통해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각종 회유와 협박(?)을 가하면서 지식을 공유하라고 했는데도 장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던 수많은 회사들은 “그것 안 된다”라고 미리 방어벽을 치거나, 아니면 지식 경영에서 실패했던 하향식(top down) 접근을 반복하기 쉽다. 재미있는 것은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2.0 구현에 가장 적극적일 것 같은 정보기술(IT)쪽 부서에서도 투자수익률이 검증되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들은 이메일 읽기에도 바쁜데 소셜은 무슨 소셜이냐며, 소셜 미디어에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시킨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부정적인 시각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이처럼 일반적인 회사에서 소셜 러닝을 도입하려면 사방에 온통 회의론자들로 둘러쌓인 척박한 환경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특히 산업 특성상 자율보다 규율이 더 중요시되는 금융업, 국방 산업, 제조업, 공공 기관이라면 더욱 열악한 조건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모든 장마다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응대하는 법(Responding to Critics)이라는 절이 있어서 가장 흔한 비판에 대해 어떤 논리로 대응할 것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이런 대응 논리를 잘 익혀도 아직 “공공의 자산으로서 웹”의 가치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셜”의 가치를 “기업”의 성과 창출과 연결해 설득하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운영의 효율성(operational efficiency)과 비용 절감, 자동화, 구조화에 사로잡힌 기존의 정보기술자들은, 일견 무질서해보이지만 활동 데이터가 쌓이면서 스스로 구조화되고 프로세스가 만들어져가는 소셜 웹을 혼돈 상태(chaos)로 바라본다. 많은 회사에서는 프로세스를 먼저 세우고, 그것에 따라 정보 시스템을 설계한다. 그리고 그런 정보 시스템을 잘 만들면 기존에 하던 일들이 자동화되고 그 결과 들어가는 돈이 절약되고, 투입되는 인원이 줄어들고, 시간이 절약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세상 일이 모두 잘 짜여진 프로세스에 맞추어 자동화될만큼 어디 그렇게 단순한가. 점점 더 많은 일들은 단순히 잘 짜여진 프로세스나 좋은 선례(best practice)를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똑같은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을만큼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따라서 자동화와 프로세스 효율화 논리만으로는 복잡한 세계에 대응하기 위한 소셜 웹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셜 웹의 시작은 무질서하고 아무런 체계도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활동 데이터가 축적되면 보이지 않던 구조가 드러나고, 없었던 프로세스가 더 현실적으로 생겨나고, 객체나 사람들간의 관계가 아주 소중한 데이터로 다시 활용된다.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인지 활동(예를 들면, 사물 인식, 글자 인식, 얼굴 인식, 의사 결정 등)을 모사하기 위해 if-then-else로 경우의 수를 규명하고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지 활동은 뇌의 복잡한 병렬 분산 처리(parallel distributed processing)의 결과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화하면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접근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어느 정도 한정된 데이터와 비교적 의사 결정 규칙이 명확한 곳에는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과 같은 규칙 기반의 심볼리즘(symbolism) 접근을 하는 반면, 아주 단순한 규칙만으로 시작하되 컴퓨터 스스로 학습하면서 지능이 발달하여 수행율이 향상되는 신명망(neural network)을 이용한 접근 방법도 있다. 과거의 정보기술의 패러다임이 다분히 심볼리즘에 가까웠다면, 소셜 웹의 기저 사상은 신경망과 같은 연결주의(connectionism) 쪽에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과거에 기업 혁신을 주도했던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TQM(total quality management), 식스 시그마(6 sigma)와 같이 프로세스와 규칙 지향적인 툴과 방법론에 익숙해진 시각에서 바라보면 엔터프라이즈 2.0과 소셜 웹을 통한 혁신은 초기에 성과도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무질서한 “한 때의 유행(fad)”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는 소셜 러닝이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교육 방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실제 일하면서, 또 일상 생활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협업하면서 배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학습 방식을 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많은 부분 우리는 자연스러운 협력과 다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때로는 우연에 의해(serendipity), 그리고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더 많이 학습한다. 우리가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전문성이 향상되고, 여러 가지 비즈니스가 얽혀서 더 복잡해지고, 직급이 올라가 더 복잡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수록,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전통적인 교육은 효용성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회사 교육 부서에서 만들어내는 교육은 투자대비 효율성이 높고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부족한 역량에 대한 것만을,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루기 때문이다. 특수하고, 전문적이지만 수요자가 없는 교육 영역은 회사에서 제공할 수 없다. 게다가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이미 해법이 알려진 문제에 대한 검증된 정답을 알려줄 뿐이다. 미래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즉시 해결해야 하는데, 보통 회사의 교육은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따로 강의장으로 가지 않아도,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성과 향상을 도와주는 여러 가지 방법(EPSS, Electronic Performance Support System)을 통해 실질적인 학습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구호만 있었다. 그것이 2000년대 초반에 회자되던 워크플레이스 러닝(workplace learning)이다. 그러나 그런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회사 교육 부서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웹 기술의 발달로 자연스러운 협업과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해주는 도구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활용해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학습을 촉진하고, 학습 결과가 실질적인 조직의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소셜 러닝”이다.

책에서는 소셜 러닝의 필요성과 커다란 사회 변화를 맨 앞장에서 언급한 다음, 딜로이트 회사의 디 스트리트(D Street)라는 시스템을 예로 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소개한다. 사실 과거에 많은 회사들이 CoP(Community of Practice)를 운영해왔지만, 자신있게 성공적이라고 할 만한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든다. 그래서 ‘커뮤니티’라는 말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2.0 방식의 커뮤니티는 과거의 인위적인 강한 유대(strong bond)를 토대로 한다기보다는 필요에 의해(ad-hoc) 일시적으로 생성되는 약한 연결(weak tie)을 기반으로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카페나 구글 그룹스같은 서비스 모형을 회사 내에 학습 목적으로 비슷하게 도입해 운영하려고 하면, 아무리 인센티브를 주고 별짓을 해도, 대부분은 초기에 반짝하다가 흐지부지 되기 쉽다. 과거의 커뮤니티에서 자료와 데이터가 더 중요했다면 새로운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자료와 데이터를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 데이터를 만들어낸 사람의 신뢰성이 어떻게 드러나고 축적되게 할 것인가가 관건인 것 같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주제는 비디오를 위주로 한 스토리텔링이다. 이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가는 장이었다. ASTD 최우수 교육 사례로 여러 번 소개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에서도 Sun Learning eXchange라는 비디오 플랫폼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사용자들이 직접 만든 비디오가 결국에는 기존 교육 부서에서 만든 콘텐츠를 압도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회사 안에 유통되는 유튜브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비디오를 만드는 작업이 점점 쉬워지고 있고, 회사의 업무가 다원화되고, 특수한 전문가의 지식을 비교적 쉽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비디오 플랫폼은 매우 강력한 소셜 러닝의 기반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마이크로블로그를 통한 소소한 활동, 진행 상황, 지식, 팁, 아이디어 공유였다. 마이크로블로깅은 우리 회사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도 비교적 많이 시도해본 것 중에 하나이다. 한국 사람들은 기업용 마이크로블로깅 사이트에 비교적 비공식적이고 가벼운 일상의 이야기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것을 조직 문화 관점에서 상하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에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마이크로블로깅을 뉴스나 정보의 공유의 장으로 쓰거나, 물리적으로 또는 업무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부서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좀 더 큰 협업의 장으로 끌어내서 실질적인 업무의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쓰려는 경향성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이크로블로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꺼내는 이야기가 일상적인 잡담을 나눌만큼 한가하냐는 물음이다. 누구든 자신의 이메일 트래픽이 많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메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비생산적으로 바빠진다. 마이크로블로그를 이용해 사내 협업을 하면 이메일 트래픽의 일부를 줄일 수 있고, 개인의 메일함에 모든 것을 정리, 보관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최소한 인스턴트 메신저로 남에 대한 험담이나 잡담을 하는 것보다 공개된 마이클로블로깅은 훨씬 더 생산적이고 건전하며, 예상치 못한 혁신의 도구로 쓸 수 있다.

네 번째는 위키를 이용한 집단 지성의 활용인데 엔터프라이즈 2.0 책에서도 나왔던 미국 정보기관의 위키인 인텔리피디아(Intellipedia)와 이름도 비슷한 인텔피디아(Intelpedia) 예를 아주 자세하게 소개해준다. 아마 요즘에는 대부분 회사에서 크고 작은 위키가 없는 곳이 없을텐데 이것도 은근히 생각보다 잘 안 되고 장벽이 많다. 여전히 사람들이 이메일을 통한 비효율적이지만 익숙한 협업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위키에 무엇을 어떻게 공유해야 할 지 모르며, 내가 아는 것을 위키와 같이 공공의 장소에 공유함으로써 나만이 가진 차별화된 가치가 바닥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 가지 한국적인 특성을 더하면 사람들이 파워포인트로 슬라이드는 잘 만들지만, 위키와 같이 위계적인 제목을 갖는 전형적인 정보성 문서 작성에 서툴고, 사실에 기반하여 이야기를 기술하는 것, 즉 이런 형태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개의 아주 성공적인 활용 사례를 보여주면 상당히 호기심을 보이고 거부감이 적은 것이 또한 위키이다.

다섯 번째로 소개되는 것은 시뮬레이션, 게임, 가상현실 등을 활용한 교육이다. 즉, 위험한 상황이나 직접 실험하는 데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상황을 재현해서 그 안에서 어떤 기술을 익히게 할 목적으로 현실 세계와 최대한 유사하며, 상당히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도 혼자 학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서로 “소셜하게” 배우게 하는 것이다. 사례로 셰브론(Chevron)사의 정유소 시뮬레이션 등이 소개되었는데, 아이비엠(IBM)에서도 상당히 많이 활용하고 있고, 과거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서도 원더랜드(Wonderland)라는 오픈 소스 가상 협업 툴을 지원했으며 내부적인 리더십 교육에 활용하였다고 한다. 내가 재미있게 느끼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플래시로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현란한 애니메이션은 다 동원해서 교육 콘텐츠를 만들지만, 정작 실제 상황과 유사한 복잡한 시나리오를 담은 시뮬레이션이나 게임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현란하고 화려한 애니메이션이 학습자들을 더 몰입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럿이 복잡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시뮬레이션이 더 몰입적인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마지막 장은 “실제 대면 행사에서 소셜 툴의 활용(Connecting the Dots at In-Person Events)”에 관한 것으로, 컨퍼런스에서 백챗 채널(backchat channel)을 활용해 사람들의 참여 폭을 넓힌다든가, 실시간 비디오 중개를 한다든가, 소셜한 행사 위키 페이지를 제공하는 것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것도 우리 회사에서 비교적 많이 실험해보았고 비교적 저항이 덜한 분야이다. 준비에서 사후 지원까지 여러 가지 용도로 쓰게 되는 행사용 위키 페이지를 운용한다든지, 행사중에 의도적으로 백채널을 운용해서 의견을 받고, 기록을 남긴다든지, 집합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간단한 협업 툴(예를 들면, 실시간으로 협업적 글쓰기, 간단한 투표나 의견 조사, 위키를 이용한 조별 과제 수행 등)을 쓰는 것은 쉽게 시도해볼 수 있다.

이미 대세를 넘어 현실이 된 소셜 러닝에 대해 우리 나라 기업들은 아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대신 스마트폰이나 모바일 기기에서 기존의 이러닝 콘텐츠를 그대로 옮겨와 엉뚱하게 “스마트 러닝(smart learning)”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을 많이 보았다. 물론 즉시성과 접근 용이성 측면에서 모바일 기기의 활용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회사 교육 부서에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다 만들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임직원들에게 인심 쓰며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인 시대가 점점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 꾸며진 16시간짜리 이러닝 콘텐츠를 보면서 혼자서 열심히 시키는 대로 학습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회사에서 “필수” 교육이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과정 종료일에 클릭, 클릭하며 페이지 넘기기에 바쁜 사람들을 무수히 봐왔다. 교실 수업에서는 항상 조별 실습도 시키고, 집단 과제도 주고, 토론도 시키고, 발표도 시키고, 좀 더 현업 일에 가깝게 하려고 액션 러닝(Action Learning)을 시도한다. 이런 집단의 욕구를 웹이라는 플랫폼에서 자연스럽게 일상화시키고 표면에 드러나게 해보자. 지금의 웹 기술은 그 정도를 지원할만큼 발전해왔다.

2008-08-19

긍정적인 전염,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 책표지유머가 인생을 바꾼다 - 10점 만점에 5.7 김진배 지음/다산북스

요즘 여러 권의 책을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보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유머가 인생을 바꾼다"는 책인데, 권해준 분은 바로 우리 어머니! 강의를 종종 하니까, 유머를 많이 익혀놓으면 좋지 않겠냐면서 읽어보라고 주셨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그냥 가볍게 보기로 했다. (웃찾사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하나이다.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는 무척 좋아하지만...) 목적이 좀 애매했었다. 유머를 발휘하는 기법을 소개한 책인지, 아니면, 써먹을 수 있는 유머의 모음집인지, 유머 예찬론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인지... 모두 조금씩 들어가 있었다.

웃음과 긍정적인 기대, 자세가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실제 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꽤 있다. 잘 알려진 피그말리온 효과부터 코미디 프로를 보고 난 후에 수학 문제를 더 잘 푼다든지 하는 그런 연구 결과들. 그러니 긍정적이고 밝은 삶의 자세를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코 손해볼 일은 없는 것 같다.

책에 나온 많은 내용중에 가장 공감이 갔던 부분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무표정 = 정상적 표정"이라는 등식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외국(호주)에 갔을 때 호주 사람들은 눈만 살짝 마주쳐도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윙크를 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래 기왕 마주칠 거면, 살짝 웃어주고, 또는 가볍게 인사도 나눠주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데.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층번호만 쳐다보거나, 땅바닥만 보거나, 괜히 신호도 못 받는 휴대 전화 꺼내서 문자 체크하는 척 하거나, 심지어 그냥 눈을 감을 필요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때 무표정은 때로는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화나거나 못마땅하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일 때도 있다. 먼저 웃고, 먼저 인사하면 기분도 훨씬 좋을텐데...

몇 주 전에 중동,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과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낙천적이고, 긍정적이고, 배움에 대해 열정적이고, 다양성과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지 몰랐다. 여유있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즐겁고 유쾌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을 긍정적인 전염(positive epidemic)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과 유쾌함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봐야겠다.

2008-02-24

17세기 네덜란드 명화로의 느린 여행: 진주 귀고리 소녀

진주 귀고리 소녀 책표지진주 귀고리 소녀 - 10점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서점에 들렀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재미있어 보여 그냥 집어든 책,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읽었다. 네덜란드에는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고흐나 렘브란트와 같은 화가 뿐 아니라 이 미묘한 그림을 비롯해 단지 35편만의 작품을 남긴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화가가 있었다. 아름다운 파란색과 노란색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한 눈이 큰 소녀를 그린 그의 이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머리에 쓴 두건으로 보아서는 귀부인도 아니고, 진주 귀고리를 한 것으로 보아선 하녀도 아니며, 배경도 없이 까맣고 어두운 바탕에 왼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리고 미스테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그림에 대해 슈발리에는 생명을 불어넣었다.


책 속에는 진주 귀고리 소녀를 비롯해 스물 세 점의 베르메르 그림이 들어있다. 음악은 아직도 나에게 삶의 일부로,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지만, 그림이나 회화는 사실 먼 나라 이야기로 남아 있었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요즈음엔 카메라 각도를 이리 잡아보고 저리 잡아가며 원하는 그림을 얻는 것이 베르메르처럼 지루하게 몇 개월에 걸쳐, 물감을 만들고, 모델의 위치를 바꿔가며 한 개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보단 훨씬 더 익숙한 일이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든 점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라는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화가와 모델, 그리고 그들 주변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미묘하고 느린 감정의 변화가 생생하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한 현시대의 독자로서 400년도 더 지난 유럽 작은 마을의 모습, 화가의 그림처럼 좀처럼 더디게 진행되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투명 인간이 되어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초반 몇 페이지에서 배경을 설명하거나 등장 인물이 여럿 등장할 때 인물들의 이름이 헷깔리고 배경이 얼른 눈에 잡히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주인공 그리트의 이야기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그래서 퇴근 후에 조금씩 시간을 내서 읽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책을 다 읽고 덮기 전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직 도둑과 아이들만 뛰는 법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그리트가 왜 아우더랑언데이크 가를 달려 내려올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아름답고 신비한 진주 귀고리 소녀 그림에 담긴 비밀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마지막 부분에 저택의 큰 마님, 마리아 틴스가 한 말이,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그리트의 삶을 인상적으로 묘사해준다.


그래, 인생이란 한바탕 연극과 같은 거야. 자네도 오래 살다 보면 놀랄 일 따위는 없을 걸세.

2007-12-24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와 설렘으로 만드는, 용기!

용기이러닝 담당자 교류회에 갔다가 책을 하나 받았습니다. 원래는 유영만 교수님이 특강을 하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변경되고 대신 이 "용기"라는 책을 얻어왔습니다. 보아하니 두께도 얇고, 그림도 많고, 읽기 쉬울 것 같아서 지금 읽고 있는 책 두어 권을 다 덮어버리고 요걸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자는 교육공학을 전공하신 분인데 이런 종류의 대중 서적 집필이나 대중 강연을 비교적 많이 하신 분입니다. 그중에 몇 번 들어봤는데 솔직히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강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을 대할 때 굳이 비판의 쌍심지를 치켜들고 보는 대신에 되도록이면 겸손하게, 나의 머리와 가슴을 비워두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나영재와 오대범이라는 두 명의 인물이 나와서 대화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인물의 작명도 그렇고, 실생활에서 있을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것을 해결해주는 튜터를 등장시키는 것도 모두가 마치 우리 나라에서 많이 보는 스토리텔링식의 이러닝 과정을 책으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요즈음 이러닝 하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링"이 화제 거리입니다. 물론 이건 이러닝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다른 자기 계발 서적들과 달리 스토리텔링식으로 책 전체를 구성한 것은 참 재미있었습니다. 비록 스토리가 아주 흥미진진하진 않았지만 말이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7가지 용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저도 해보지도 않고 미리 걱정하고, 해보지 않은 것 때문에 더 후회하는 어리석음을 많이 범해왔습니다. 누구나 현재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미래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택이란 행동으로 옮겨야 의미가 있습니다. 재고 또 재는 신중함도 중요하지만 그러다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간 뒤 후회하면 뭣하겠습니까? 행동으로 옮기려면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자신감과 용기는 불확실한 세상과 끝없이 일어나는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오대범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세상이 모두 확실하게 밝혀져 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재미없는 인생도 없을 거야.


No-Where! 짙은 안개 속엔 나의 길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Now-Here! 바로 지금 여기가 나의 길이다!

2007-09-26

무지개 원리와 즐거운 인생

무지개 원리

부모님이 먼저 보시고 꼭 읽어보라고 강권(?)하며 주신 책 중에 하나가 무지개 원리였다. 나는 사실 이런 식으로 성공의 비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보통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단편적인 연구 결과들이나, 자신의 주장에 들어맞는 에피소드나, 선대 사람들의 문헌에서 맥락을 잘라버린 한 두 줄을 인용하여, 마치 모든 것이 확정적인 것처럼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또 보통은 사회/정치/문화적인 가치나 맥락은 제거되고, 개인과 개인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확확 바뀌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이런 대중 심리학(pop psychology) 책이 심리학을 전공으로 조금이라도 맛보았던 사람들에게는 가장 읽기 힘든 책이다. 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할 때에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도록 훈련받게 되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주어진 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받아들이고,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사실로 내세우기 위해 필요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꿰맞추는 구성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런 책을 읽으며 긍정적인 자세를 갖도록 훈련된다.


딜레마는 이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들은 많지 않아서 보통은 역사나 자신의 경험이나, 또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그럴듯하게 보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경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즐거운 인생

자, 이런 복잡하고 삐딱한 시선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면 매 페이지에는 금과 같이 소중한 지혜들이 가슴에 콕콕 와닿는 사례들과 함께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저자의 7가지 무지개 원리로 요약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꿈을 품고, 뚜렷한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목적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는 샘물같은 메시지이다.


인생 뭐 있어! 머뭇거리지마!라는 영화 즐거운 인생의 카피가 무지개 원리를 방금 읽은 후의 나에게 비수처럼 꽂힌다. 신나고 즐거운 락 음악 영화이지만 영화 보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40대 아버지들의 철없는 반란의 결론은 무엇일까? 주인공들의 앞으로 삶이 불을 뿜는 활화산이 될지, 아니면 연탄불에 희미하게 익어가다 꺼져가는 조개구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저질렀다! 그리고 적어도 저지른 그 순간 그들은 참 행복해보였다. 무지개 원리에서도 그랬었다. 꿈을 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품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관건이라고. 이 말이 내 가슴에 미묘한 파장으로 전해온다.

2007-08-21

다양성이 주는 풍요로움에 대한 찬미, 롱테일 경제학

롱테일 경제학. 크리스 앤더슨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즉흥적이고 짧게 소화할 수 있는 TV, 인터넷과 친해지면서 책과 내가 얼마나 거리가 멀어졌는지... 이 정도 분량의 책을 읽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을 질질 끌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난 주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더운 틈을 타서 밀렸던 책을 다 볼 수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리고 웹과 정보 기술의 세계에서 롱테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그게 무엇인지 자세히 읽어볼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롱테일 경제학은 웹 2.0의 경제학이라고들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시어스 로벅의 카탈로그 우편 판매에서부터 롱테일 현상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롱테일 경제학이 사실 우리 생활과 사회 문화 전반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상당히 그럴듯하게 설명해주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한 것은 전문성과 지식의 롱테일 현상이다. 세상의 지식, 정보, 전문성은 지금까지 소수의 엘리트들이 다 독점하였고, 그들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지대하였다. 그런 전문성의 정점에는 지식을 생산해내는 학교, 뉴스를 생산해내는 매스 미디어, 특허로 꽁꽁 묶인 히트 상품을 만들어내는 거대 기업, 거대 광고주를 끌어들일만큼 영향력이 있는 매체와 영향력이 있는 매체에만 광고를 내는 거대 광고주, 전문적인 지식과 수련을 통해 의료 행위를 독점할 수 있는 의사, 간판만 내세워도 누구나 꺼뻑(?) 죽는 명문 학교 출신자들, 말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기업들이 알아서 기는, 모든 고급 정보를 모을 수 있는 국가 권력, 거대한 전문가 군단과 자금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내는 헐리우드 영화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때로는 간판을 이용해, 때로는 명성을 이용해, 때로는 권력을 이용해, 때로는 거대한 조직 동원력을 이용해, 또는 거대한 자본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고 문화를 이끌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박스 오피스 1위인 영화에 우르르 몰리고, 톱텐에 들어가는 가요를 줄줄 외었으며,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는 저녁 드라마와 초 히트 상품이 된 베스트 셀러 책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류 사회의 구성원임을 즐겼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지 않은가? 다들 똑같은 스토리에 열광하고, 똑같은 물건을 하나쯤은 갖추어야 하고, 똑같은 음악적인 취향을 가져야 하는가? 왜 세상에 나오는 수십 만종의 책 중에서 단 몇 권만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나머지는 세상에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지는가?


저자는 지금까지의 경제 패러다임이 희소성의 가치, 한계 효용, 제한된 선택이라는 기반 위에서 세워졌다면 이제 누구나 생산할 수 있는 도구가 널리 보급되고, 생산품을 쉽게 유통할 수 있는 새로운 웹의 세계가 열리면서 80대 20으로 대표되는 선택과 집중의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개인 블로그의 등장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생산의 장을 찾지 못했던 숨은 재주꾼, 숨은 전문가들이 블로그를 통해 의미있는 생산과 유통에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블로거들이 만들어내는 뉴스는 주류 미디어들이 미처 다루지 못했던 특수한 영역의 전문성을 점점 키워가고 주류 미디어들의 위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다가서고 있다. 주류 미디어가 여론을 독점하던 시대에서 뉴스의 롱테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 양과 질에서 브리태니커를 훨씬 앞서버린 위키피디아도 마찬가지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 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획일주의와 흑백 논리의 유혹에 쉽게 빠졌다. 획일적인 군사 문화를 거부한다던 그들도 사실은 진골, 선골 운동권의 계보를 따지며, 누가 더 선명한 운동가인지를 중요하게 여겼고,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사람들은 다른 것에 관심을 갖는지를 항상 원망하였다. 정말 80년대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러니 90년대에 생활 문화, 먹거리, 성적 자유, 환경 운동, 소비자 운동, 장애인 문제, 가정 폭력, 학교 문제, 인종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시민 사회 운동이 등장할 때 획일주의 논리를 고집하려 했던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의 관심과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역도 이제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롱테일 경제학을 나는 복잡성의 경제학으로 이해하였다. 소수의 주류와 스타가 의도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회가 이제는 길게 꼬리를 이루며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일반 범부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꼬리쪽에 있는 사람들도 UCC를 만들 수가 있고, 구글의 애드센스와 같은 소규모이지만 짭짤한 광고를 유치할 수도 있고, 스스로 광고주가 될 수도 있으며, 유명 블로거가 될 수도 있고, 거라지 밴드를 이용해 음악 작곡가가 될 수도 있고,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부 기관에서 전문가 회의를 몇 번씩 하고 전문가들을 모셔오려고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사이트는 파리를 날리지만, 일반 사용자가 만들고, 다른 사람이 자유롭게 가감할 수 있게 운영한 사이트는 인기가 좋은 것이다. 롱테일 현상은 단지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사회, 문화, 정치 영역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러니 사람들이여, 이제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다. 당신만의 영역에서...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책의 구절을 인용한다.


다음에 제시된 것들은 우리가 희소성 사고 때문에 빠지기 쉬운 몇 가지 정신적 함정들이다.


  • 모든 사람들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 모든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한다.

  • 히트 상품이 아니면 실패한 것이다.

  • 엄청나게 성공해야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 직접 제작 비디오는 좋지 않다.

  • 자비 출판은 좋지 않다.

  • 인디 음악이란 음반사와 계약을 하지 못한 음악이다.

  • 아마추어는 서투르다.

  • 잘 팔리지 않으면 품질도 좋지 않다.

  • 만일 좋은 제품이라면 반드시 인기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엄청난 선택권이 주어진 것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인데... (후략)


2007-04-08

한비야의 멈추지 않는 걸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저.

오지 여행가로 유명했던 한비야가 긴급 구호 전문가로 변신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그녀의 변신 이후 지난 5년간 아프가니스탄, 말라위, 잠비아, 이라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북한, 팔레스타인, 네팔, 서아시아의 쓰나미 현장 등 정말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참혹하고, 위험한 현장에서 긴급 구호 요원으로 활동했던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한비야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은 그녀의 팬이 되어버린다. 특유의 친화력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소명 의식으로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현장에서 그녀는 홍보 전문가로 그리고 물자 배분가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런 책이 없었으면 관심은 커녕 이름도 몰랐을 서아프리카의 시에라이온, 라이베리아에 있는 소년병들의 삶에 대해 양심있는 지구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치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았으나,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 있었기 때문에 표시하지 못하고 그냥 한 번 읽고 넘어간 것이 너무 아쉽다.


세계에는 당장의 삶 자체를 위협받고 기본적인 생명권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은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의 고통도 겪었고, 동족끼리 총칼을 겨누며 싸우면서 전쟁과 기아, 가난의 아픔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제 우리의 관심을 과거에 우리가 겪었던 극도의 어려움을 현재도 겪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쏟아야 할 때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도움이 일시적이지 않고 그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결국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에 먹을 거리를 제공해줄 한 줌의 "씨앗"이라는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도 한비야가 묻는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라고. 그래서 그 안타깝고 괴로운 현장에서, 때로는 버겁고 무섭고, 능력에 의심이 가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토하는 한비야는 그래도 현장의 사진 속에서 싱글벙글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말한다.


"그건 아마도 희망의 싹 때문일 것이다. 재난의 크기와 원인은 달라도 마음을 열고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파란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 척박한 땅을 뚫고 돋아난 그 작고 기특한 것을 보았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2007-04-02

웹 2.0 기획론: 강력한 웹 2.0 서비스를 만드는 13개의 키워드를 읽고

정유진의 웹 2.0 기획론: 강력한 웹 2.0 서비스를 만드는 13개 키워드 책표지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주말에 서점에 들러 과감하게 산 두 권의 책 중의 한 권이다. 책을 사고 나서 2주일간 서울로 출장을 다녔는데, 출장을 가면서 지하철에 있는 시간이 많아 책읽기에 좋은 환경이 저절로 생겼다. IT 분야의 컬럼니스트들은 대부분 배경이 엔지니어인 경우가 많다. 분야의 특성상 기술적인 배경이 전혀 없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경향성이나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 정유진NHN에 근무하는 웹 기획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훌륭한 기획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참 부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웹 기획을 하건, 웹 기술 또는 웹 디자인을 하건 자기 영역의 전문성을 가지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고, 사회 저변에 흐르는 큰 변화의 틀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정유진은 웹 2.0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그것들을 꿰뚫는 13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시하였다. 예전에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을 읽었을 때 느꼈던 흥미와 설레임이 다시 배가 되어 살아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다시 웹 2.0의 키워드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관계라는 단어이다. 과거의 웹은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 "링크"였다. 물론 링크는 지금도 매우 중요한 "관계"를 설정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아지고, 공급자도 다양해지면서 그들간의 관계를 단순하게 링크로만 맺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그리고 아주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매우 뛰어난 소수의 전문가 또는 공급자가 관계를 맺어주기에 웹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너무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들이 많아지면서 웹은 지나치게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 쓰레기장에서 숨어있는 보물을 용하게도 잘 찾아주는 녀석이 바로 "구글"이다. 즉, "구글"의 검색은 웹 1.0 시대의 천재이다. (물론 구글은 웹 2.0시대를 연 대표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웹 2.0 시대가 오면서, 쓰레기가 데이터로 변모한다. 마이크로포맷 등을 통해 데이터의 규격이 생기고, XML 웹 서비스라는 것을 통해 전혀 소통이 불가능했던 데이터와 다른 곳에 있는 데이터의 소통 방법이 생기고, 기존에는 데이터로 취급하지 않았던 데이터들의 관계나 숨은 데이터(메타 데이터)가 새로운 데이터가 된다. 기존의 웹에서 단일한 사이트 내에서만 조회 가능하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조회(쿼리)가 이제 전체 웹을 꿰뚫으며 가능해진 것이다. 웹 2.0은 기존의 웹 1.0 시대에서 팀 버너스 리가 꿈꾸었던 시맨틱 웹에 한 발 더 다가선 개념이다. 단일한 서비스나 단일한 사이트가 아닌 웹 전체가 거대한 네트워크가 되고, 전체 웹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사용자가 또는 기계가 원하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추출할 수 있게 된다는 개념은 사실 인간의 지식 표상(knowledge representation)에 대한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아이디어를 주고 받은 결과이다. 인간의 뇌세포들은 시냅스를 통해 매우 복잡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고, 지식들이 한 개의 뇌세포가 아닌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저장된다. 즉, 하나의 개념이나 지식을 활용하려면 관계있는 모든 영역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고, 그 활성화되는 정도는 과거에서부터 축적되어온 지식들간의 연결 강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인간은 아마도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 사고를 확장해갔는지도 모른다.


김중태 원장은 그의 저서,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에서 웹 2.0의 특징 중에 "자동화"를 강조했었다. 맞는 말이다. 쓰레기로 가득찬 곳에서는 쓰레기 처리를 자동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의미있고 서로 관계가 있는 데이터로 가득찬 곳에서는 기계에 의한 자동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근원적으로 웹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통제되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 기반의 자동화를 구축하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힌다. 그것들을 보완해주는 중간 단계의 기술들이 현재 나와 있는 웹 2.0의 기술과 서비스 아이디어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복잡해질지도 모르는 웹에 "자동화"를 구현하려면 김중태 원장이 말했듯이 인공지능의 기술, 특히 신경망처럼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들을 입력받고 학습하며 진화하는 시스템이 더 발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글처럼 매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공간/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기술 서적이 아니다. 웹 2.0도 기술 용어가 아니다. 그래서 기술을 다루지 않는, 또는 웹을 다루지 않는 사람들도 웹 2.0이나 이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웹 2.0의 시대에 강조되어온 "관계"와 "소셜(social)", "데이터", 어텐션(attention)" 그리고 "참여"와 "공유"라는 개념은 조직 내의 의사 소통 과정, 의사 결정 과정, 전략 수립, 지식 경영, 교육과 훈련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조직의 규모가 크고, 구성원들의 업무, 성향, 국적, 역량 수준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 많은 조직들이 웹 2.0 또는 엔터프라이즈 2.0을 조직 내에 어떻게 적용하여,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해진다.

2006-08-14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 혁신의 8가지 함정과 8단계 성공법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저자 존 코터. 번역 한정곤. 출판사 김영사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존 코터 지음.

나는 어쩌면 회사원이 체질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수도 없이 의심해왔다. 특히나 학교 졸업하고 처음 회사 들어갈 때의 그 두려움과 낯설음, 그리고 부적응적 태도는 아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내가 회사 생활을 한 지도 참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기업 경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이나 리더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별 근거없이 잘 꾸며진 틀에 자기 주장을 맞추어 늘어놓는 것들이어서 그런 책들을 보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기업이 원하는 변화의 리더: 기업 혁신의 8가지 함정과 8단계 성공법"이라는 책을 보게 된 이유는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순전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아직까지 조직 경험이 한참 부족한 내가 변화 관리를 강의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안 되는 영어로. 만약 그 내용이 e-learning에 관한 것이거나, 웹 접근성에 관한 것이거나, 우리 회사의 이러닝 시스템 사용법에 관한 것이라면 일주일을 하든 이주일을 하든 별 상관 없는데, 변화 관리라는 영역은 완전히 초짜중에 초짜인데 갑자기 영어로 8시간을 떠들어야(?) 한다는 것이 적잖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교육도 받고, 다시 영어로 된 e-learning 과정도 들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다시 한국어로 된 책을 집어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은 참 쉽고 예제가 많이 있어서 쉽게 쉽게 넘어갔다.

물론 이 책을 읽고 경영 서적들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기업에서 생겨난 혁신이라는 말이 요즈음은 공기관과 정부에서까지 사용한다고 한다. 이제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가고 모두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고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어제의 영광이 오늘, 내일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이건, 조직이건 빠르게 움직이는 열차 위에서 쉬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성장은 커녕 현상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 회사에 들어와서 공부 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배워야 하고 또 배우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사실이다.

또 하나, 어떤 일이든 단숨에 우연하게 운좋게 되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냥" 혼자 "샤샤삭" 해버리면 되지, 뭘 그리 복잡하게 사람들 만나서 의견 물어보고, 워크샵하고, 설문 조사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이메일로 보내고, 다시 만나서 간담회도 하고, 또 아주 복잡한 변화 관리 계획을 세울까라고 의아해했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회사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집단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다. 새로운 정책이나 변화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매우 환호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회의적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방관할 수도 있고, 주도적일 수도 있고, 끌려다닐 수도 있으며,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할 수도 있고, 위험을 피하려 할 수도 있고, 바빠서 관심을 못 갖을 수도 있고,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교하고 단계적인 변화를 계획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실행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책에 있는 변화 관리 8단계가 저자의 주장인지 아니면 그 전에 다른 문헌에서 주장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하나가 다 결코 쉽게 보고 지나쳐서는 안 될 소중한 단계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흔히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기업이 원하는 혁신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인생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에도, 우리들이 부닥치는 많은 일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차근차근 관계된 사람을 참여시키면서, 또는 관계된 자원을 모아가며 목표를 향해 성실하고 집요하게 단계를 밟아가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