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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5

남자 둘

남녀는 성적관심, 여여는 연대감…남남은?이라는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문화 평론가 남재일님의 글이다. 남자 둘이 모여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거나, 가벼운 여가를 같이 즐기거나 하는 경우가 남녀, 여여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일견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영어 표현에 걸스 톡(girl's talk)이라는 것이 있다. 여자들끼리의 대화. 여자들끼리의 시시콜콜한 잡담(?) 이라는 뜻으로 약간은 성차별적인 말이기도 하다. 사실은 남자도 업무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 말고, 그냥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남자와 남자가 만나면 보통은 더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물론 아주 친한 또래 친구끼리는 사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같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도, 공원을 산책하는 경우도, 취미를 같이 즐기는 경우도, 여행을 같이 가는 경우도 있다. 죽이 잘 맞으면...

기사에서도 지적한 가장 불편한 자리는 보통은 직장 선배들에 의해 주도되는 술자리이다. 빠질 수도 없고, 막상 가려니 불편한 그런 자리. 보통 그런 자리에 둘만 앉아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둘이 앉았을 때에 얼마나 어색했는지 기억나는 자리가 있다. 예전 회사의 한 상사 한 분이 생각난다. 그 분은 어디를 가나 회사 이야기를 끊이지 않고 하셨다. 점심 먹으면서도, 쉬는 시간에도, 저녁의 술자리에도 주로 회사 이야기만 하셨다. 그런데 한 번은 그 분이 나하고 저녁에 술 한 잔 하자고 하셨다. 내심 적잖이 부담이 되었지만 차마 거절할 수도 없었다. 회사에서는 아무런 감정 없는 일 중독자에 탱크같이 밀어붙이는 사람인 줄 알았던 그 분이 술자리에선 그래도 자기 힘든 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해서 어느 정도 경계심(?)은 풀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분이 말씀하신 힘든 점은 다 회사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낮에도 업무 이야기, 저녁에도 소위 말해 다시 공장(?)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공장 이야기에 관심을 덜 보이는 것은 웬지 내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약해보일지도 모른다는 압박 때문인지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쳐주고 또 내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해야 했다.

누구나 조직원이기에 앞서 사생활이 있는 개인이다. 폭탄주가 돌고, 모두가 상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폭탄주를 거부하거나, 상기되어 있는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면 보통은 집단의 눈총을 받게 된다. 이렇게 개인성을 드러내기가 힘들고 그것이 위협받는 것은 아주 힘든 경험이다. 이런 개인성은 그냥 혼자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다른 사람과 소통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적인 대화, 걸스 톡은 중요한 것 같다. 직장을 막 옮기고 초반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개인성을 소통할만한 상대를 직장 내에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 같다. 그냥 개인으로서 나를 봐라봐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러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알코올에 얽매이지 않는 남성과 남성의 관계도 중요하다. 남성으로서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지나친 책임감, 의무감, 조직에 대한 충성심, 마쵸 기질, 주도에 대한 의무, 이런 것들 한꺼풀만 벗겨내면 개성 충만하고, 유쾌한 한 개인이 드러난다. 남성들이여, 그렇게 유쾌한 개인들의 만남을 즐겨보자.

2007-04-02

웹 2.0 기획론: 강력한 웹 2.0 서비스를 만드는 13개의 키워드를 읽고

정유진의 웹 2.0 기획론: 강력한 웹 2.0 서비스를 만드는 13개 키워드 책표지예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주말에 서점에 들러 과감하게 산 두 권의 책 중의 한 권이다. 책을 사고 나서 2주일간 서울로 출장을 다녔는데, 출장을 가면서 지하철에 있는 시간이 많아 책읽기에 좋은 환경이 저절로 생겼다. IT 분야의 컬럼니스트들은 대부분 배경이 엔지니어인 경우가 많다. 분야의 특성상 기술적인 배경이 전혀 없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의 경향성이나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 정유진NHN에 근무하는 웹 기획자이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훌륭한 기획자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참 부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웹 기획을 하건, 웹 기술 또는 웹 디자인을 하건 자기 영역의 전문성을 가지면서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고, 사회 저변에 흐르는 큰 변화의 틀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정유진은 웹 2.0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그것들을 꿰뚫는 13개의 공통 키워드를 제시하였다. 예전에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을 읽었을 때 느꼈던 흥미와 설레임이 다시 배가 되어 살아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 다시 웹 2.0의 키워드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관계라는 단어이다. 과거의 웹은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 "링크"였다. 물론 링크는 지금도 매우 중요한 "관계"를 설정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세상의 지식은 양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아지고, 공급자도 다양해지면서 그들간의 관계를 단순하게 링크로만 맺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그리고 아주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매우 뛰어난 소수의 전문가 또는 공급자가 관계를 맺어주기에 웹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너무 복잡해졌다. 그래서 이제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지식들이 많아지면서 웹은 지나치게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 버렸다. 그런 쓰레기장에서 숨어있는 보물을 용하게도 잘 찾아주는 녀석이 바로 "구글"이다. 즉, "구글"의 검색은 웹 1.0 시대의 천재이다. (물론 구글은 웹 2.0시대를 연 대표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웹 2.0 시대가 오면서, 쓰레기가 데이터로 변모한다. 마이크로포맷 등을 통해 데이터의 규격이 생기고, XML 웹 서비스라는 것을 통해 전혀 소통이 불가능했던 데이터와 다른 곳에 있는 데이터의 소통 방법이 생기고, 기존에는 데이터로 취급하지 않았던 데이터들의 관계나 숨은 데이터(메타 데이터)가 새로운 데이터가 된다. 기존의 웹에서 단일한 사이트 내에서만 조회 가능하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조회(쿼리)가 이제 전체 웹을 꿰뚫으며 가능해진 것이다. 웹 2.0은 기존의 웹 1.0 시대에서 팀 버너스 리가 꿈꾸었던 시맨틱 웹에 한 발 더 다가선 개념이다. 단일한 서비스나 단일한 사이트가 아닌 웹 전체가 거대한 네트워크가 되고, 전체 웹이 하나의 거대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가 되어 사용자가 또는 기계가 원하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추출할 수 있게 된다는 개념은 사실 인간의 지식 표상(knowledge representation)에 대한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아이디어를 주고 받은 결과이다. 인간의 뇌세포들은 시냅스를 통해 매우 복잡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고, 지식들이 한 개의 뇌세포가 아닌 여러 지역에 분산되어 저장된다. 즉, 하나의 개념이나 지식을 활용하려면 관계있는 모든 영역이 동시에 병렬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고, 그 활성화되는 정도는 과거에서부터 축적되어온 지식들간의 연결 강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인간은 아마도 기본적으로 "관계"를 통해 사고를 확장해갔는지도 모른다.


김중태 원장은 그의 저서, 웹 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에서 웹 2.0의 특징 중에 "자동화"를 강조했었다. 맞는 말이다. 쓰레기로 가득찬 곳에서는 쓰레기 처리를 자동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의미있고 서로 관계가 있는 데이터로 가득찬 곳에서는 기계에 의한 자동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근원적으로 웹은 누구 한 사람에 의해서 통제되는 한정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정해진 규칙 기반의 자동화를 구축하려고 하면 한계에 부딪힌다. 그것들을 보완해주는 중간 단계의 기술들이 현재 나와 있는 웹 2.0의 기술과 서비스 아이디어들이다. 그러나 점점 더 복잡해질지도 모르는 웹에 "자동화"를 구현하려면 김중태 원장이 말했듯이 인공지능의 기술, 특히 신경망처럼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들을 입력받고 학습하며 진화하는 시스템이 더 발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글처럼 매우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공간/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기술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기술 서적이 아니다. 웹 2.0도 기술 용어가 아니다. 그래서 기술을 다루지 않는, 또는 웹을 다루지 않는 사람들도 웹 2.0이나 이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웹 2.0의 시대에 강조되어온 "관계"와 "소셜(social)", "데이터", 어텐션(attention)" 그리고 "참여"와 "공유"라는 개념은 조직 내의 의사 소통 과정, 의사 결정 과정, 전략 수립, 지식 경영, 교육과 훈련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조직의 규모가 크고, 구성원들의 업무, 성향, 국적, 역량 수준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앞으로 많은 조직들이 웹 2.0 또는 엔터프라이즈 2.0을 조직 내에 어떻게 적용하여,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