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는 총 21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작년보다는 독서량이 조금 줄었습니다. 올해는 인생을 요동치게 만드는 큰 사건에 대한 여파로 하반기에는 집중해서 책을 보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반면에 당장 해결되지 않을 큰 짐과 난관이 올 때에, 책은 잠시나마 저만의 환상적인 메타버스를 제공해주고, 위안과 새로운 자극이 되었으며, 작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게도 해주었습니다.
2023-12-27
(나만의) 2023년 올해의 책
2023-12-16
이모들의 다정한 마음이 전해지는,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
우리말 가운데 "이모"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을 과연 외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소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젊은 시절을 낯선 땅에서 보내며 살아왔던 이모들의 이야기가,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듯 선의의 거짓말처럼 세심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 주인공 해미의 눈으로, 나중에는 해미가 자라면서 조금씩 성숙해진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주인공과 이모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마치 커다란 유화를 돋보기를 대고 조금씩 조금씩 살펴보자, 저쪽 한편에서는 알지 못했던 색깔과 질감을 다른 한편에서 발견하면서 풍성함을 얻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지극한 정성과 수고는 곧 사랑이며 배려이다. 해미의 친구 레나, 한수가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려는 노력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이다.
나는 유리병에 담아 대 대서양에 띄우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네게 보낸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다정한 마음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면서도 눈부신 독일의 햇살에 감탄했던 선자 이모에게도, 그리고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에게도,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에게도,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안부를 걱정해주며 위로해준다.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2023-12-05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 숫자를 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
제가 초기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들어서,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던 조언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무엇이든 정량화하고, 순위를 매기고, 척도를 만들고, 범주를 나눔으로써 소통이 쉬워지고, 애매모호한 것이 명확해지고, 취약점이 드러나고, 데이터에 기반한 정당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 맹목적인 "수(number)"에 대한 권위 부여는, 숫자가 빠진 의사 소통에 대해서는 객관적이지 않고, 비과학적이며,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게 만듭니다. 통계학자인 폴 굿윈의 《숫자는 어떻게 생각을 바꾸는가》에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숫자와 관련된 우리의 실수를 짚어줍니다.
전반부에서는 숫자가 잘못 쓰이거나 지나치게 강조되어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에 대해 다룹니다. 숫자, 지표, 측정치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이것을 발표하고, 공유하고, 읽고, 해석하고, 의사결정하는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 모든 과정에서 왜곡과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정말 많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현실 사례들이 나옵니다. 후반부에서는 정확하고 정직한 숫자가 제시되어도, 그것을 놓치고, 외면하고, 무시하게 되는 이유와 위험에 대해 다룹니다.
1장에서는 순위에 대해 다룹니다. 입학, 졸업, 입사, 성과 평가, 입찰, 선거, 오디션, 베스트셀러 선정, 올해의 배우 등 우리는 순위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과연 이것을 순위로 매기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케네스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impossibility theorem)였습니다. 세 개 이상의 서로 다른 대안이 있을 때, 투표권을 가진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선호 순위를 잘 반영하는 투표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특히 여러 가지 지표를 종합한 종합 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정말 중대한 곳에 활용하는 것의 문제점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 종합 순위 대신에 왜곡의 가능성이 적은 개별 척도(hot indicator)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2장에서는 프록시 지표에 대해 다룹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직접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때, 대상의 속성을 반영할 것으로 보이는 간접적인 측정치를 프록시 지표라고 합니다. 프록시 자체의 타당성도 문제이지만, 지표 자체가 목표가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나을 수 있다는 것이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입니다. 폭스바겐은 배기가스 배출 기준이라는 지표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극단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 부정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프록시 지표로서 오랫동안 확고한 지위를 누려온 국내 총생산(GDP), 지능지수(IQ)에 대한 문제점, 오용된 사례들도 나옵니다.
3장에서는 대표성(representativeness) 문제를 다룹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평균"이라는 대표값은 사실 집단 구성원 누구도 대변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평균값을 근거로 집단의 특성을 간편하게 특징짓고, 유형화(stereotype)하는 것의 위험을 이야기합니다. 2018년에 보았던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전투기 좌석을 설계할 때, 모든 조종사들의 평균 체형을 고려하여 만든 결과, 어떤 조종사에게도 맞지 않은 좌석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쨌든, 복잡하고 다면적이고, 개별적인 개체들을 단 하나의 대표값으로 단순화해서 의사소통할 때에는 항상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4장에서는 범주화(categorization)와 경계(border, boundary)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논문을 쓸 때, 연구자들은 통계적인 유의 수준(significant level)으로 피셔가 제안한 0.01 또는 0.05를 많이 사용합니다. 그래서 영가설이 참일 때, 이런 실험 결과가 나올 확률은 5%나 1%보다 낮으니, 영가설을 기각한다라는 논리를 사용합니다. 저도 논문 쓸 때, 유의미한 극단적인 확률값이 나오면, "별이 떴다!"라고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5%, 1%라는 기준은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임의의 경계선 안에 들어가기 위해 합법적이거나 편법적인 방법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89.5로 B 학점을 받은 사람과 90점으로 A학점을 받은 사람은 완전히 다른 범주로 분류되고 큰 차이로 지각되지만, 99점을 받은 사람과 90점으로 A를 받은 사람은 같은 범주로 묶이게 됩니다.
5장에서는 특이하게 라이프트래커, 라이프로깅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마트워치와 같이 24시간 나와 함께 하는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나의 많은 신체 활동과 상태를 숫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숫자들이 나의 다채롭고 복잡한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는 여론 조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론 조사는 원칙적으로 무작위 샘플링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질문 상황, 답변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염과 왜곡이 생깁니다. 보통은 조사 기관에서 밝히는 오차 범위보다 훨씬 큰 오차 범위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에서는 사소하게 발생할 수 변화에 대해 과도한 서사를 붙여서 여론을 왜곡하거나 유도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언더독 효과, 밴드왜건 효과, 헤딩(herding) 효과 등 여론 조사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는 심리사회적인 기제들도 많습니다.
7장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행복도, 삶의 질, 고통의 정도 등의 지표에 대해 다룹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1위부터 후순위에 있는 나라까지 발표되면, 각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순위를 해석하고, 정책을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응답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는 있었던 것일까요? 순간적인 다른 변수에 의해 응답이 매우 달라질 수도 있는 불안정하고 불분명한 것에 대해 현미경을 들이대어, 소수 세째 자리로 갈리는 행복도 순위는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오픈AI의 이사진들이 지향했었다는 (피터 싱어의) 효율적 이타주의의 이야기도 잠깐 나옵니다.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과 같은 이타주의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정량화된 지표에 기반해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가 큰 곳에 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효율성을 타당하게 어떻게 정량화하느냐 문제가 제기됩니다.
8장은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는, 사전 확률에 대한 고려를 이야기합니다. 즉, 베이즈 정리(Bayes' theorem) 이야기입니다. 검사의 오류(presecutor's fallacy) 이야기를 보니, 잘못된 확률 판단으로 인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법정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더군요. 코로나19 백신의 효과, 음주 운전자의 식별, 범죄 용의자나 테러리스트의 식별, 거짓말 탐지기의 효과와 같이 매우 민감하고, 치명적인 곳에서 기저 확률을 고려하지 않은 확률 판단에 오류가 생길 경우, 그 여파는 심각할 수 있습니다.
9장에서는 정확한 숫자가 제시되어도 우리의 기존 신념에 반하는 경우, 왜 우리는 그것을 종종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다룹니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사전 확률을 0 또는 1로 놓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어도, 우리의 믿음을 바꿀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교육 수준이 높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훈련받은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되어 노벨병(Nobel disease)라고도 불립니다. 또, 역화 효과(backfire effect)는 기존 믿음을 반박하는 사실(예: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없었다!)이 나와도, 기존 믿음이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때로는 집단이 객관적인 정보를 무시하고, 집단 사고(group thinking)에 빠질 경우,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피그스만 침공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에서 보듯이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한 과장된 기대와 유치 실패의 원인을 집단사고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10장에서는 과장된 공포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러 가지 지표들은 현대 사회가 옛날보다 나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것은 낮은 확률이지만 극적으로 보이는 비행기 사고, 끔찍한 흉악 범죄들입니다. 공포를 조장해 이득을 보는 세력들과, 부정적인 뉴스에 더 주의를 쏟게 되는 우리의 뇌가 함께 작용하여 세상이 점점 더 험악해지고, 미래는 더 어둡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공포 마케팅은 언론, 기업, 종교, 선동적인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여, 때로는 잘못된 투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정확한 숫자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메시지가 나오게 된 동기를 잘 살펴봐야 합니다.
11장에서는 통계적 사고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의심스런 통계치나 숫자를 대할 때에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판단(시스템 1 사고)과 함께, 느리고 깊게 생각해보는 시스템 2 사고를 병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보가 한결같이 편향되어 있어도, 일관성이 있고, 명쾌하게 일치할 때 우리는 타당하다는 착각(타당성 착각, illusion of validity)에 빠진다고 합니다.
어쩌다보니 책의 내용의 주요 부분을 인용 부호 없이 거의 인용, 요약해버렸습니다. 그만큼 곱씹어보고 싶은 내용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 책은 서점에서 "자연과학", 수학 관련 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숫자가 많이 나오지 않고도 숫자 이야기를 쉽게 전해줍니다. 그리고 사실, 숫자를 만들고, 가공하고, 조작하고, 읽어들이고, 해석하고, 공유하고, 적용하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런 면에서 훌륭한 심리학 서적입니다. 2023년을 시작할 때 서강대학교 하영원 교수의《결정하는 뇌》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수많은 의사 결정(decision making)을 해야 하는 우리 인간은, 매우 많은 실수를 하고, 합리적이지 않고, 편향에 휘둘린 결정을 합니다.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숫자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제한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또 드러난 숫자 뒤에 숨겨진 숫자와 의도, 의미를 파악하려고 더 노력하면, 조금은 더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2023-11-24
자이언트 임팩트, Those were the good old days!
KBS 박종훈 경제 기자가 쓴 《자이언트 임팩트》를 읽어보았습니다. 원래 자이언트 임팩트 또는 테이아 가설로 불리우는 이 용어는, 45억년 전에 지구가 화성만한 크기의 테이아와 충돌하여 달이 탄생했다는 유력한 과학적 가설입니다. 저자는 그것에 견줄만한 세계 경제의 커다란 변화와 충격 4가지를 거론하며,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의한 글로벌 분업 시대, 초저금리 시대,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던 시대, 고성장 시대는 이제 지나간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과거 30~40년의 경제 작동 방식을, 앞으로도 비슷하게 적용하여 예측을 한다면 틀린 예측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 네 가지 자이언트 임팩트는 인플레이션, 금리, 전쟁, 에너지입니다. 경제학적 기본 지식이 없는 저같은 사람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해놓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여기에 요약하는 것은 저의 능력 밖의 일이라서, 각 항목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첫 번째는 '인플레이션'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특별히 물가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장기적인 저물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큰 이유로, 미국이 움켜쥔 세계의 패권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의 원활하게 이루어진 분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갑자기 찾아온 공급망의 문제, 그리고 피부로 느껴지는 고물가에 우리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계속 올리고, 우리 나라는 정부가 물가를 인위적으로라도 잡으려고, 가히 관치 경제라고 할 만큼 깊게 개입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플레이션이 과연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여러 가지 환경의 변화로 이제 더 이상 물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좋던 시절(the good old days)은 다 지난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물건의 값인 물가에 이어, 돈의 값인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이례적으로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미국 연준이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이라 불리는 금리 인상을 연속해서 단행하고, 이제 언제 기준 금리를 동결할 것인지가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과거처럼 저금리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높은 저축률에서 비롯되었던 풍부한 자금이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는 금리를 다시 올리는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게다가 고령화로 인한 자금 시장의 변화,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리스크가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경제 뉴스를 볼 때마다, 금리와 다른 경제 변수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저같은 경제학 맹에게는 항상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면, 금리와 채권 가격의 관계 같은 것 말이죠. 어쨌든 그동안 저금리 현상에 잘 적응하여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이용한 과거의 투자 전략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게 되어간다고 할 수 있겠네요.
세 번째는 바로 전쟁입니다. 미국이라는 원톱 초강대국 체제의 세계 패권이 이제 미국과 중국이라는 투톱으로 바뀌고, 거기에 유럽, 동아시아의 신흥국, 에너지 패권을 쥔 러시아, 중동 나라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직접적인 무력 도발인 전쟁, 또는 패권 전쟁, 공급망 전쟁, 기술 전쟁, 국지 전쟁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말로 침공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었지요. 게다가 그 전쟁이 이렇게 오랫동안 출구를 찾지 못하고 계속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또는 하마스)간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은 당사국 국민들에게는 당연히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그 여파는 에너지, 식량, 인플레이션 등으로 전세계에 미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쟁을 대하는 나라들의 이해관계도 단순하지가 않아서, 이제 나라들도 각자도생, 개인들도 각자도생의 시대가 오며, 예측 가능성은 낮아지고, 변동성은 매우 커지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로 언급된 것이지만, 결코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에너지'입니다. 한 때, 원유 고갈에 대한 대안으로 셰일 가스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셰일 가스가 발견되면서 미국은, 중동이나 러시아와 같은 원유 생산국에 대한 의존과 간섭을 줄이려고 했었죠. 그러나, 셰일 가스가 여러 이유로, 미국이 바라는 대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의 역할을 잘 못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비난했던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를 찾아가 원유 생산을 늘려달라고 싹싹 빌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우디와 중동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이란은 미국과 핵 합의 복원을 하려고 하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전쟁과 핵무기 기술 확보 등의 여러 가지 변수가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유럽은 어떻습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에 크게 의존했던 천연가스 공급이 어려워지자, 겨울 난방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또,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려고 해도, 발전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은 대부분 중국이 키를 쥐고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풍부한 화석 연료 에너지를 활용해서, 고성장을 이룩했던 시대는 또 하나의 옛날 이야기가 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불확실성과 변화만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미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변화를 읽는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고, 거기에 국가, 사회, 개인이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이전에는 서영민 기자의 《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라는 책을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충격 이후 급하게 변화하는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현상과 요인들, 특히 반도체 문제, 인구와 기후 위기, 빈곤의 문제 등을 포함해 깊게 파헤치는 책이었습니다. 기자란 모름지기 발생하는 "피상적인 사건에 숨겨져 있는 고구마 줄기와도 같은 원인들을 깊게 파헤쳐 분석해주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상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책도 같이 보면, 거시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23-11-14
수 백 페이지 상담일지를 깔끔하게: Airtable Page designer
지난 번에 구글 설문(Google Forms)의 확장 프로그램인 폼 퍼블리셔(Form Publisher)를 이용해서 설문받은 결과지를 한 장 한 장 PDF 양식에 맞게 변환, 저장하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잣폼(Jotform)이라는 툴을 이용해서 설문받은 결과지를 PDF 양식에 맞게 저장하는 방법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대표적인 노코드 툴인 에어테이블(Airtable)을 이용해서, 사용자에게 설문으로 받았거나, 또는 사용자가 직접 데이터에 입력한 내용들을 PDF 양식에 맞게 출력하는 방법을 알아봅니다. 실제 업무 활용 사례를 하나 공유합니다.
상담 관리와 상담 일지 정리
프로젝트 개요/문제
한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명의 상담사가, 여러 내담자를 여러 번 상담하는데, 매회 상담시마다 상담일지를 적어야 했었습니다. 이런 상담 운영은 관리 시스템이 있지 않으면, 여러 상담사의 일정을 조율하고, 상담 시간을 배치고, 원하는 문서를 제시간에 수집하고, 필요할 때에 안내를 보내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프로젝트 기간이 달랑 5~6개월 이내인데, 그것을 위해서 거대한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려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적당히 엑셀이나 구글 시트로 운영을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기도 하고, 일정 관리, 협업이 어렵습니다.
상담 일지도 문제였습니다. 상담 일지에는 반복적으로, 상담자, 내담자, 상담장소, 시간, 유형 등이 들어가고, 상세한 상담 내용을 적어야 합니다. 이것을 처음에는 파워포인트나 워드프로세서 양식으로 만들어서 양식을 채워오라고 상담사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양식을 조금씩 변경해서 쓰기도 하고, 글꼴, 문단, 페이지 나누는 방법 등이 개인마다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과가 파일로 나오기 때문에 파일명을 일관성있게 붙이고, 상담사는 파일을 제출하고, 관리자는 취합해서 파일 관리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솔루션: Airtable 기반의 상담 관리 시스템
그래서, 에어테이블로 상담 관리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초기 구축은 3~4시간 정도에 끝났고, 운영하면서 조금씩 보완해나갔습니다. 상담이 남아있는 내담자는 누구이고, 완료된 내담자는 누구이며, 상담사별로 얼마나 상담을 했고, 어떤 일정이 근간에 예정되어 있고,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이 한 눈에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상담 일지 입력
제가 추가로 기대했던 것은 바로 상담 일지의 관리였습니다. 각 상담사들이 에어테이블에 직접 들어가서 상담일지 작성 필드에 상담 내용을 서식이 있는 리치 텍스트(rich text)로 입력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에어테이블의 리치 텍스트 입력은 마크다운(Markdown)을 지원하며, 마크다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아래 그림과 같이 보조 툴박스가 떠서, 금방 익숙하게 서식이 있는 문서 작성이 가능합니다.
결과보고 및 상담 일지 출력
6개월 정도 되는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발주처에 상담일지 원본을 상담사별, 내담자별, 주제별, 날짜별 등으로 정렬하여 제출해야 했습니다. 만약에 상담 일지를 파일로 만들었다면, 파일들 정리하느라고 하세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에어테이블에는 상담 일정 등 메타 데이터와 상담 내용(상담 일지)가 같이 정리되어 있으니, 원하는 방식으로 그룹핑하고, 정렬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상담 일지 양식은 에어테이블의 페이지 디자이너(Page designer)를 이용해서 1시간 정도 걸려서 템플릿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데이터베이스에 상담사들이 입력한 수백 건의 데이터와 내용들이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상담일지 양식으로 변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 백 페이지의 상담 일지는 그냥 클릭 한 번으로 PDF 파일 하나로 제작되었습니다.
데이터베이스의 리포트 생성
데이터가 많고, 계속 변한다면, 그것의 구조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structure, logic)과, 보여주는 것(presentation)이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구글 설문에 들어간 데이터, 그리고, 잣폼에 들어간 데이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데이터 입력은 편하게 하되, 보여주는 아웃풋은 예쁘게 원하는 모양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반복적인 템플릿이나 반복적인 데이터가 있는 자료들은 되도록이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관리하는 것이 좋겠지요. 일상적인 업무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원하는 형식으로 만드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 백 명의 상장, 수료증을 만든다거나, 인보이스를 출력한다거나, 재직증명서를 만든다거나, 특정한 형식의 요청서를 만드는 경우, 여러 명의 주소를 기반으로 우편 레이블을 만드는 경우, 수백 명의 고객에게 이름과 몇 가지 정보만 바꿔서 메일을 보내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문서들은 양이 적으면,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의 템플릿을 이용해 직접 작성할 수도 있지만, 조금 양이 많아지면, 보통 스프레드시트와 연계하여 소위 "메일 머지"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계속 업데이트되며,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집해야 하는 데이터라면 데이터를 입력, 수집, 관리하는 시스템이 같이 따라줘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데이터를 원하는 형식(포맷)으로 만들어서 출력해주는 리포트(Report) 기능이 필요합니다.
간단한 데이터베이스와 쉬운 리포팅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지금까지 구글 설문의 폼 퍼블리셔, 잣폼의 PDF 생성 기능, 그리고 에어테이블의 페이지 디자이너를 살펴보았습니다. 각각의 경우 약간의 특징과 장단점이 있습니다.
- 스프레드시트(엑셀, 구글시트 등)와 워드프로세서 메일 머지(워드, 한글 등)
- 변화가 없는 한정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특별히 입력 인터페이스는 필요없으며, 딱 한 번 작업하면 끝나는 경우에 적합.
- 워드프로세서에서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를 한 번 불러오면 끝남.
- 보통 우편 레이블 출력, 상장 출력, 청구서 등에 많이 활용
- 구글 설문의 폼 퍼블리셔(Form Publisher for Google Forms)
- 사용자로부터 설문으로 받은 내용을 원하는 양식으로 변환하여 출력할 때 유용
- 최종 출력 양식에 PDF 뿐 아니라,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지정할 수 있어서 유연함.
- 양식 하나하나는 파일로 관리되어 편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대량으로 정리할 때에는 번거로울 수도 있음.
- 계산, 차트 등의 기능을 이용해서 매우 복잡한 개인별 리포트를 생성 가능(예: 심리검사 결과 리포트)
- 잣폼의 PDF 변환
-
- 페이퍼로 된 PDF 파일을 온라인 설문으로 변환시킬 때 편리함.
- 특히, 서명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온라인으로 바로 처리할 수 있어서 편리함.
- 사용자로부터 받은 데이터는 깔끔하게 잣폼 테이블 데이터로 관리되고, 각종 연산 처리가 가능함.
- 개별 또는 여러 개의 PDF 파일을 만들 수 있음. 기능이 많다 보니 사용법이 약간 까다로운 편
- 에어테이블의 페이지 디자이너 (Page designer for Airtable)
-
- 초기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있음.
- 강력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관리자용, 사용자용 인터페이스 구축이 비교적 쉽게 이루어짐.
- PDF 리포트도 파일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 있으므로, 개별 또는 그룹별로 관리하기가 쉬움.
2023-11-11
스마트폰에 중독된 현대인을 위한 책, 호모 아딕투스
김병규 교수가 쓴 《호모 아딕투스》를 읽어보았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새로운 경제 메카니즘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물건 자체가 귀하던 제품 경제의 시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관심 경제의 시대, 이제는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시간을 하염없이 붙잡아 둘 수 있는 중독 경제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중독 대상은, 고통이 따르는 지출을 동반하거나, 일상적으로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심각성이 좀 덜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쇼핑, 뉴스, 게임, 쇼셜 미디어, 유튜브 등은 많은 경우 공짜이기도 하고, 매우 적은 노력으로 손 안에서 바로 실행 가능한 점이 다르다고 합니다. 게다가 내 손 안의 현금이 줄어드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는 카드 결제, 앱 안에서의 포인트 사용 방식으로 지출을 하면, 소비할 때 느껴지는 고통이 훨씬 덜하다고 합니다. 많은 데이터를 가진 빅테크 기업들이 정교하게 짜놓은 알고리즘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사실은 보여지는 것을 계속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거대 기업들의 정교한 낚시에 걸려 점점 대상에 중독되어 가면서도,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했다는 착각에 빠져 살게 됩니다.
저 자신을 한 번 돌아봅니다. 나는 무슨 중독에 빠져있을까? 다행히도, 저는 게임이나 쇼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때 뉴스에 강박적으로 빠져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중요한 일에 몰입하거나, 진지한 독서를 못 하게 하는 가장 큰 훼방꾼은 뉴스였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지 확인 가능하고, 끝없이 업데이트되고,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식이 가득한 뉴스를 계속 확인하게 되는 상태가 계속 되었습니다. 물론, 뉴스를 전혀 모르고, 현 사회를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나에게 아무런 연관도 없고, 쓸데도 없는 "최신" 뉴스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았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좋아요"라는 간헐적 보상도 있지만, 올라오는 소식의 "최신성"이 더 중독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독서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다른 공부를 하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내내, 포털 사이트를 뒤적거리며 최신 뉴스를 확인하고 나면, 너무 허무했습니다.
책에서는 중독 경제 메카니즘을 잘 이해하고, 거대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는 중독 경제 세상에서, 소규모 비즈니스 주체가 살아남는 전략을 몇 가지 제시합니다. 마이크로 어딕션(micro-addiction) 전략은 비교적 작은 스케일로 중독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 예로 10대들이 좋아하는 틱톡,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소셜 미디어 레딧, 고도의 큐레이팅이 들어간 쇼핑몰 29CM 등의 사례가 나옵니다. 두 번째는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딕션 프리(addiction free)전략입니다. 이 전략을 적용한 비즈니스 사례로 결심을 실행하게 도와주는 챌린저스, 광고 없이 고품질의 글이 유통되는 플랫폼 미디엄 등을 제시합니다. 그 외에도 책을 읽어보면, 더 세분화된 비즈니스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후반부에서는, 중독 경제 시대에 중독에 빠지지 않고, 현명하게 개인이 살아가는 방법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광고를 꺼놓는다든지, 스마트폰의 알람을 꺼놓는다든지, 소비를 미루는 습관을 들이는 것 등을 제시합니다. 나아가, 중독 경제 시대를 이끌어가는 데에 필요한 인재상과 역량을 제시합니다.
책에는, 갤럽이 시행한 한 관찰과 행동 분석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방해를 받지 않고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이 평균 3분 5초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소개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업무를 방해받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3분 15초가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 뉴포트는 멀티태스팅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진정한 생산성은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딥 워크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어떤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을 중독이라고 한다면, 의도한 일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중독 경제 메카니즘은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고, 전략입니다. 그 안에서 비즈니스 주체로서, 또는 일의 주체인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 책과 함께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2023-11-07
전자 계약(PDF 서명 요청) 솔루션 비교
전자 계약 솔루션의 필요성
지난 번에는 어떤 PDF 문서든 상관 없이, 무료로 쉽게 전자 서명(eSign)을 넣는 4가지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이 말은, 특별히 서명할 수 있게 만들어진 PDF가 아니어도, 아무 PDF에나 전자 서명은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에게 전자 서명할 수 있는 필드를 넣지 않고, 그냥 모양만 서명할 수 있게 보내면, 잘 모르는 상대방은 인쇄해서, 종이에 서명하고, 다시 스캔받아서 회신해줄 가능성이 많습니다.
좀 더 친절한 방법은 PDF 문서 안에 "서명 필드"를 추가하여, 이메일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로 상대방에게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은 문서를 받자마자, "특별한 소프트웨어가 없어도", 바로 그 자리에서 서명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을 핵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상 전자 서명(electronic signature) 또는 전자 계약 솔루션이라고 합니다.
솔루션 비교 (롱리스트)
그렇게 서명 요청을 하는 툴과 솔루션은 수 백 가지입니다.
- 참고 1. 가트너의 전자 서명 소프트웨어 리뷰
- 참고 2. G2 크라우드의 전자 서명 소프트웨어 리뷰
- 참고 3. 캡테라의 Best Digital Signature Software for Windows
- 국내 솔루션: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내 시장에서 많이 쓰이는 솔루션들도 있습니다: 모두싸인, 싸인오케이, 위드싸인, 이폼사인, 글로싸인, 도뉴, 유싸인, 페이퍼리스 등이 있고, 여기에 내부 HR 워크플로우와 연계된 플렉스, 원티드스페이스 등이 있고, 내부 전자 결재, 또는 디지털 서명까지 연계한 것을 감안하면, 선택지는 정말 많아집니다.
일반적 전자 서명 요청 프로세스
서명 요청을 보내는 방식은 거의 동일합니다.
- 상대방의 서명을 필요로 하는 문서를 업로드하거나, 오픈합니다.
- 내 서명이 필요하다면, 먼저 내 서명을 합니다.
- 상대방 서명이 필요한 곳에 서명 필드를 삽입합니다.
- 서명 요청을 받을 수신자의 이메일 또는 메신저 아이디를 지정합니다.
- 상대방이 이메일/메시지를 받으면, 아무런 소프트웨어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전자 서명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 서명이 완료되면, 문서의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메일 통보가 가고, 서명된 문서가 공유됩니다.
- 서명 요청자는 이 모든 과정을 관리자 페이지에서 트래킹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차이는, 한꺼번에 서명 요청을 몇 명에게 보낼 수 있느냐, 서명 필드 외에 다른 필드를 어떤 식으로 추가하느냐, 전자 서명 외에 디지털 서명을 추가하느냐, 계약서 템플릿을 제공하느냐 정도입니다.
솔루션 비교 (숏리스트)
오늘은, 아주 소규모 사업자나 프리랜서, 자영업자 또는 개인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PDF 서명 요청 소프트웨어를 알아봅니다. 아래 표에 제가 직접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서 PDF 전자 서명 요청 기능이 있는 솔루션들을 열거했습니다. 비교적 관대한 무료 플랜이 있는 것도 있고, 무료 요금제가 없는 것도 있습니다. 유료 최저 요금제로 가더라도 서명 요청 건수에 차이가 좀 있습니다.
서비스명 | 무료 요금제 서명요청 건수 |
유료 요금제 서명요청 건수 |
최소 요금 (/월) | 주 기능 |
---|---|---|---|---|
Adobe Acrobat Standard | - | 무제한 | 15,000원 | 종합 PDF 솔루션 |
Box Sign | 월5건 | 월15건 | 13,375원 | 클라우드 스토리지 |
DigiSigner | 월3건 | 무제한 | $12.00 | 전자 계약 |
DocHub | 월3건 | 무제한 | $10.00 | 전자 계약 |
Dropbox Sign (Dropbox와는 별도 상품) | - | 무제한 | $15.00 | 클라우드 스토리지인 Dropbox와 통합 상품도 있음 |
ilovePDF | 총 문서 크기 500MB 이내 | 무제한 | $4.00 | 종합 PDF 솔루션 |
Jotform Sign | 월10건 | 월100건 | $34.00 | 온라인 폼, DB 테이블 |
PandaDoc | - | 무제한 | $19.00 | 전자 계약 |
Paperless.onl | 최초20건 | 월15건 | 10,000원 | 전자 계약 |
SignFree (서명 필드 추가 없음.) | 무제한 | 무제한 | 무료 | 전자 계약 |
SignNow | - | 무제한 | $8.00 | 전자 계약 |
SignWell | 월3건 | 무제한 | $8.00 | 전자 계약 |
Smallpdf | 일2건 | 무제한 | 10,500원 | 종합 PDF 솔루션 |
글로싸인 | - | 월5건 | 5,000원 | 전자 계약 |
모두싸인 | - | 월5건 | 7,900원 | 전자 계약 |
싸인오케이 | 2023년 무료 | 10건 | 20,000원 (종량제) |
전자 계약 |
이싸인온 | - | 무제한 (개인) | 9,900원 | 전자 계약 |
이폼사인 | 최초100건, 30일간 | 월50건 (Personal) | 10,000원 | 전자 계약 |
SignFree는 무제한으로 서명 요청을 할 수 있고, 수신자도 바로 그 자리에서 서명을 할 수 있긴 한데, 정확히 어디에 서명을 해야 하는지 서명 필드를 지정해주지 않고, 수신자가 서명을 알아서 정확한 위치에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유료 솔루션들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개인적 선택/추천
회사/조직에서 계약서, 전자 서명을 많이 써야 한다면 Adobe Acrobat Standard나 Pro 또는 수많은 국내 솔루션 중에 하나를 추천합니다.
개인, 프리랜서, 일인 사업자이거나, 일회성 서명 요청, 소량의 계약을 해야 한다면, 간단하고 빠른 솔루션으로 Smallpdf나 iLovePDF를 추천합니다.
조금 사용법이 복잡하지만, 비즈니스에서 필요하다면, 온라인 양식(폼)을 매우 정교하게 만들고 관리해주는 Jotform도 사용해보십시오. Jotform은 오프라인 PDF 문서를 쉽게 온라인 문서로 만드는 데에도 유용합니다. 구글 설문보다 복잡한 온라인 양식을 만드는 데에 적합하고, 온라인 양식이나 PDF 문서에 쉽게 서명 요청란을 넣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전자 서명 요청 용도로 현재 Smallpdf를 쓰고 있습니다.
2023-11-02
여러 개, 다른 종류, 다른 환경 브라우저 사이의 북마크 동기화 방법
데스크톱 PC 몇 대와 모바일 기기 몇 대를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 한 쪽에서 북마크(즐겨찾기)해둔 것이 다른 쪽에서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으면 좋겠죠. 그것도 같은 브라우저끼리 말고, 데스크톱 크롬과 모바일 오페라가 동기화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북마크 동기화 방법을 정리해봤습니다.
같은 종류의 브라우저끼리 북마크 동기화
다행히 요즘 브라우저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벤더의 브라우저끼리는 북마크, 로그인 정보, 확장 프로그램 정보 등을 다 동기화 해줍니다.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해당 브라우저에서 제공하는 계정에 로그인하면 알아서 여러 대의 데스크톱과 모바일 기기에 동기화를 해줍니다.
- 구글 크롬 북마크 동기화
- 마이크로소프트 엣지 즐겨찾기 동기화
- 애플 사파리 북마크 동기화
- 파이어폭스 북마크 동기화
- 오페라 북마크 동기화
- 비발디 북마크 동기화
- 네이버 웨일 북마크 동기화
- 삼성 인터넷 북마크 동기화
소셜, 클라우드 북마크 관리
오래 전에는 브라우저의 북마크 관리를 위해 소위 소셜 북마크 서비스라 할 수 있는 del.icio.us (현재는 서비스 중단), 거기에 노트나 하이라이트 기능 등을 추가한 diigo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클라우드에 북마크를 저장해주는 Google Bookmarks (현재는 서비스 중단)를 잠깐 썼습니다. 그리고 여러 브라우저간에 북마크를 동기화해준다는 xBrowserSync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이런 서비스는 그다지 수요가 많지 않아서인지, 대부분 중단되었습니다. 현재는 xBrowserSync가 오픈 소스이며, 빅테크 회사들처럼 많은 정보를 수집해가지 않는 무료 서비스로 남아있는데, 문제점이 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브라우저 사이에 북마크 동기화를 지원하는 대신, 같은 종류의 브라우저 북마크 동기화 기능을 꺼야 하고, 동기화 총 용량이 제한적인 몇 개의 퍼블릭 서비스 서버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의 서비스들 대부분이, 브라우저에 내장된 북마크 추가, 삭제, 관리 기능과는 조금 다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것도 잘 쓰지 않게 되는 요인이었습니다.
결론: EverSync
저의 욕구는 단순합니다. 그냥 여러 대의 데스크톱과 모바일 기기, 그리고 서로 다른 종류의 브라우저(크롬, 엣지, 파이어폭스 등등) 상관없이 똑같은 북마크를 쓰고 싶은 것입니다. 브라우저의 고유한 북마크 관리 기능은 그냥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에버씽크(Eversync)라는 프로그램을 쓰게 되었습니다. 크롬 확장(크롬, 엣지, 오페라, 비발디, 웨일 등) 프로그램과 파이어폭스 애드온 프로그램이 있으니, 사실상 거의 모든 브라우저를 커버합니다.
확장 프로그램을 데스크톱의 모든 브라우저에 설치합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동기화 옵션을 이용해서 동기화를 한 번만 시켜주면, 나중에는 알아서 추가 동기화가 됩니다. 모바일 브라우저는 원래, 같은 종류의 데스크톱 브라우저와 동기화가 되므로, 이제 내가 쓰는 모든 브라우저의 북마크 동기화가 됩니다.
everhelper.me/client 사이트에서 북마크를 직접 관리하고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유용하게 썼던 기능은, 중복 북마크 찾아서 제거하기와 빈 폴더 찾아서 제거하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