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시내의 황금 물고기를 읽었다. 생일날 선물로 받은 몇 권의 책 중의 하나인데, 최고는 나중에(Save the best for last)라는 말처럼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책은 맨 나중에 봐야지 하고 미뤄놓은 책이다. 저자는 작곡과 음악학,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한 사람이고, 독일과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다. 그리고, 선입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소설가 황순원의 손녀이고, 시인 황동규의 딸이다.
그냥 일상 생활의 소소한 일면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과 관찰을 적어놓은 수필이지만, 글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으며, 이렇게 생생하게 나의 오감을 깊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고, 깊이 빠져들었다. 글 중에는 메시앙에서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다양한 음악가들의 음악이 등장했고, 그 때마다 나는 마치 지금 내 곁에 그들이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또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남부 독일의 젖은 소나무숲에서 맑고 정갈한 솔내음을 맡는 느낌과 을씨년스럽고 살풍경한 시카고의 추운 겨울에 기숙사 방에서 추위에 떠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글쓴이의 이야기에 공감을 넘어선 연민과 연대감을 느꼈던 것은 그런 공감각적인 글의 수려함이나, 생생함이 아니었다. 거리의 산들 바람, 눈오는 날 창문에 부딪친 갈매기 한 마리, 연한 잎이 돋아나는 봄들판 이런 모든 것들이 예사롭지 않게 보여지는 것은 바로! 그가 고향이 아닌 외국에서 홀로 생활하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떠날 것을 염두해두고 여행을 하는 사람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여행자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토박이 사람들과 더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그들과 짧은 순간 친구가 될 수 있다. 여행자들에게 낯선 세계는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거나, 정감이 넘치거나, 순박한 인심이 한없이 고마운 곳이거나, 경외감이 저절로 드는 자연의 세계이다. 그러나 익숙한 곳을 떠나 어딘가에 "당분간" 정착하고 사는 "이방인"들에게 세상은 외로운 현실이기도 하면서,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는 미묘하고, 민감하고, 소프트한 세계이다.
황시내의 글에서 주변 인물들은 실제 이름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대신 "K"라고 이니셜만 나오거나, 옛 남자 친구라는 익명의 인물로 잠깐 풍경처럼 등장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엄청난 할 일이 끝나질 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현재에 둘러쌓여 있지만 사실 그는 현재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사람들과의 대화보다는 차라리 자연과 자신의 독백을 더 즐겼던 것 같다. 그래서 다다르고자 했으나 한 번도 이룰 수 없었던 열망처럼, 그의 황금 물고기는 화려하기보단, 고독하고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