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행복한 이혼은 없다
, 한겨레 21의 도발적인 표지 이야기 제목이다. 자동차가 집보다 더 중요한 필수품이 된 우리 사회에서 꽤 큰 회사에 다니는 내가 자동차도 없다고 하면, 그러니까 장가를 못 갔다고 하거나, 아직 철이 들지 않았다고 하거나, 왜 아직 차를 사지 않았냐고 매우 의외라는 반응들을 보인다. 사실 나는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주범인 자동차 문명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때문에 나라도 자동차를 거부해보자는 심리로 버텨왔었다. 자동차가 없었기에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더운 여름날이나 추운 겨울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회사 정문에서 사무실까지 꽤 거리가 있어서 걷는 것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걷는 시간만큼 주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시내에서도 가끔씩은 아주 먼 거리를 일부러 걸어다니며 시내 구경을 하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러다 지난 6월에 구입한 자전거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발로 굴리는 두 바퀴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두 발로 걷는 세상과 또 달랐다. 가장 적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더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는 인류의 훌륭한 발명품, 자전거를 타며 가보지 못한 곳들을 찾아가는 재미를 마음껏 즐겼다.
그러나 세상은 나 혼자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자동차가 없는 내가 가끔씩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들 눈이 따갑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자동차를 사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지구에게 해를 덜 주고 싶은 마음에서 새로 생산된 차가 아닌 중고차를, 그리고 가장 작은 경차를 샀다. 물론 차를 사기 전에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경차는 사지 말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고민 끝에 나는 경차를 사고 말았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몇몇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사실 따갑기도 했다. 사람들은 나보고 일 년만 타다가 새 차로 바꾸라고 했다. 그 때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갔지만 몇 년 안에 차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차를 사고 나서 비상시에 차를 타고 출근할 수 있다는 게으른 믿음 때문에 늦잠을 자기도 하고, 차를 타고 가면 될 것이라는 게으른 믿음 때문에 성당에도 늦게 출발한다. 차가 없었으면 최소한 사무실에서 회사 정문까지 걷고,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었겠지만 차츰 그나마의 걷는 일도 귀찮아하게 되어간다. 차를 타면서 자연의 맑은 공기와 쏴한 바람과 깊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잃어버린다. 나만의 좁은 공간에서 추울 때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더울 때는 찬바람이 나오는 편안한 상태로 잽싸게 원하는 곳까지 쉽게 갈 수 있는 차를 타면서 움직이는 것, 땀흘리는 것, 시간이 늦어서 발바닥에 땀나게 뛰는 것 이런 것들을 혐오하게 된다. 이런 모습으로 내가 급격하게 변해가는 것이 두려워 차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새 차를 사면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딱히 어딘가 차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차를 산지 이제 석 달이 되어가지만 사실상 차와 나는 별거
상태이다. 차를 사고 주유를 딱 한 번 했는데 아직도 기름은 반 이상이 남았다.
차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영남대 박홍규 교수 같은 분은 잘 알려진 분이다. 그리고 한겨레 21 이번 기사에 나온 박영숙 한국 여성 재단 이사장도 날마다 베엠베(BMW, 버스(Bus), 지하철(Metro), 걷기(Walking))를 타는 분이다. 나보고 차와 이혼하라고 한다면? 사실 자신 없다. 왜냐면 차를 알게된지 이제 몇 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어도 거부할 수 없을만큼 차가 아쉬울 때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 당분간 소원한 상태로 지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