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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장편 소설)

몇 달 전부터 알뜰 통신사의 요금제로 바꾼 후에 전자책 구독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어서, 재미있는 책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도서관 전자책 서비스도 좋지만, 없는 책이 많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최근에 읽은 책들은, EBS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자본주의 사용설명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등이 있습니다. 읽은 기록들을 살펴보니, 대략 두 권의 비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을 한 권 정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어볼 책들을 찾아 헤매다 우연하게 발견한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작품을 접했습니다. 작가 이름이 차인표입니다. 맞습니다. 유명한 배우, 차인표씨입니다. 저는 배우 차인표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소위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알려졌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책 표지가 참 아름답고, 제목이 조금 낭만적(?)입니다. 마치 헤르만 헤세의 한 작품이나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저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책표지가 아름답습니다.


1931년 일제 강점기, 백두산 기슭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는 대략 20여년 전에 회사 사람들과 함께 중국을 통해 백두산 여행을 하였습니다. 그 때 보았던 신비한 느낌이 영롱한 문장으로 정말 잘 그려져 있습니다. 

천둥소리를 내며 하얀 물을 쏟아 내는 폭포 위를 날아 우산대처럼 하늘로 길게 뻗은 이깔나무 숲을 지나니, 끝없이 펼쳐진 노란 들꽃밭이 나타납니다. ... 억새밭이 끝나는 그곳에 작은 언덕이 봉긋 솟아있네요. 

백두산 자락에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끼 제비의 시각으로 하늘에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바라봅니다. 이야기를 구수하고, 따뜻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호랑이 마을의 촌장님 댁, 너른 억새밭, 잘가요 언덕의 꿀밤나무가 눈에 선하게 잡힙니다. 그리고 '오세요 종' 소리가 "땡~ 땡~" 멀리서 들리며, 때로는 차가운 백두산 안개 속에서 미세한 호랑이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4D 영화관에 온 것처럼 말이죠.

작가는 1997년 한국에 오셨던 훈 할머니를 보고, 그 형편없는 시절을 버텨 낸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무려 10년에 걸쳐서 원고를 붙잡고서, 백두산을 직접 탐방하고, 사실을 검증하며,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계시는 '나눔의 집'에 가보고, 다듬고 또 다듬어 세상에 선보인 작품입니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시대였지만, 백두산의 천지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우리 나라와 일본 젊은이들이 무도한 시대에 맞서 서툰 사랑을 지켜내려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호랑이 마을의 순이를 비롯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물건처럼'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파렴치한 죄를 널리 알리고 죄인들을 응징하겠다는 작가의 첫 마음은,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어갑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해자들이 진정한 반성과 사과, 용서를 구함으로써, 할머니들과 그들 사이에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라고요.  

잔인하고, 아프고, 시린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들에 담아서 선사해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