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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4

슈퍼맨과 이현석

수퍼맨이었던 사나이 영화의 한 장면: 휘날리는 빨간 망토를 입고 지붕 위에 서있는 주인공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영화를 봤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작정을 하고 봤다기보단 무작정 영화관에 가서 시간이 되는 영화를 고른 결과였지요. 영화로서 그다지 박진감 넘치는 재미는 없었습니다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슈퍼맨', 미국식 발음으로 '수퍼맨'은 남자 애들이면 한 번 쯤 꿈꾸어봤을 법한 영웅입니다. 어렸을 때 수퍼맨 시리즈를 참 재미있게 봤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망또를 휘날리며 멋지게 하늘을 날고, 눈에서 광선이 나가고, 입에서 세찬 바람이 나가고,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쏜살같이 날아가 착한 일을 하는 수퍼맨! 이번 숭례문 화재에 수퍼맨이 날아왔더라면 하는 아쉬움까지 생깁니다. 수퍼맨과 같이 정의로우면서 힘센 사람을 우리는 갈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의 수퍼맨은 진짜가 아니었지요. 단지 자신이 수퍼맨이었다고 믿는 과대망상에 빠진 한 정신 장애인일 뿐입니다. 과대망상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정신 질환의 증상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서 다중 인격 등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지만 보다 드라마틱한 이상 행동을 다루었다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현석은 과장되기는 했지만 꽤 그럴 듯한 인물입니다. 사실 그는 과대망상을 가졌지만 남에게 해를 끼칠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고도로 문명화되지 않고, 사람들이 여유있게 원시적인 생활을 즐긴다면, 이런 사람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이웃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훨씬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며, 사람들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습니다. 자동차나 전기와 같은 문명의 전리품들은 생활의 편의를 더해주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도 커졌습니다. 이런 문명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격리되기 마련이지요. 주인공은 정신 병원에서 환자들을 다루는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을 '하얀 악마'라고 칭했었지요. '하얀 악마'는 조금이라도 '정상적'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적'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치료'해야만 하얗고 깨끗한 세상이 된다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이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깨끗이 치워야 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거나, 또는 바꾸거나, 고치거나, 소독하거나, 때로는 박멸해야 합니다. 그렇게 치료받아 이현석으로 돌아온 '수퍼맨'은 과연 행복했을까요? 비록 허구이지만 자신이 수퍼맨이라는 믿음이 기쁨을 주고, 에너지를 준다면, 약물로 그의 에너지와 기쁨의 원천을 빼앗아가버리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일까요? 혹시 우리는 그런 비정상적인 것, 비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돌려야 깨끗해진다는 강박적인 집단 결벽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영화에서 남을 돕는 수퍼맨과 광인 이현석은 동일 인물입니다. 즉, 전적으로 악한 인물, 전적으로 선한 인물, 전적으로 이상한 사람, 전적으로 옳은 사람, 전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고,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엄격한 잣대와 숨쉬기 힘든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 또는 다른 기준으로 바라봐야만 이해가 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편,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기다리는 수퍼맨이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같이 좋은 사람의 모습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얀 악마'가 되어 마지막 남은 '광인'을 '계도'하려고 매달리지 않고, 조금 여유있게, 너그럽게 바라보면, 영화속 희정이(어린 아이)처럼 이현석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