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가운데 "이모"라는 단어가 주는 친근함을 과연 외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소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서 젊은 시절을 낯선 땅에서 보내며 살아왔던 이모들의 이야기가,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듯 선의의 거짓말처럼 세심하게 펼쳐진다. 처음에는 불의의 사고로 언니를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 주인공 해미의 눈으로, 나중에는 해미가 자라면서 조금씩 성숙해진 시각으로 다시 바라본 주인공과 이모들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마치 커다란 유화를 돋보기를 대고 조금씩 조금씩 살펴보자, 저쪽 한편에서는 알지 못했던 색깔과 질감을 다른 한편에서 발견하면서 풍성함을 얻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니까.
지극한 정성과 수고는 곧 사랑이며 배려이다. 해미의 친구 레나, 한수가 선자 이모의 첫사랑을 찾아주려는 노력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이다.
나는 유리병에 담아 대 대서양에 띄우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네게 보낸다. 나를 위해 너의 편지를 전해준 아이들의 마음이 나를 며칠 더 살 수 있게 했듯이. 다정한 마음이 몇 번이고 우리를 구원할 테니까.
다정한 마음은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면서도 눈부신 독일의 햇살에 감탄했던 선자 이모에게도, 그리고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주인공에게도, 선자 이모의 첫사랑 K.H.에게도,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안부를 걱정해주며 위로해준다.
내 삶을 돌아보며 더이상 후회하지 않아.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으니까.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