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사랑과 영혼』을 보지 못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0년 말에 개봉되어, 엄청난 흥행 실적을 낸 영화인데, 서울에 유학온 나는 대학 시절 '영화관'이란 걸 가보지 못했다. 서울에 와서 초기에 두 가지가 낯설었다. 하나는 지하철이라는 서울에만 있는 교통 수단! 다른 하나는 좌석 예약을 해야 한다는 영화관! 그런 저런 핑계와 그 당시 시대의 분위기 때문인지, 아무튼 영화라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하도 많이 나온 음악 언체인드 멜로디는 많이 들어봤던 것 같다.
프랑스의 대중 소설가 마르크 레비의 『고스트 인 러브』를 전자책으로 고르면서, 혹시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고스트가 되어서야 만나게 되는, 어쩌면 뻔하고 진부한 그런 이야기! 이렇게 짐작을 했지만, 그런 뻔한 사랑 이야기를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미권이나 미국, 캐나다가 아닌 유럽, 프랑스 작가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다.
주인공 토마는 피아니스트이다. 작품에서 몇 개의 피아노곡이 나온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너무나 유명한 곡이고, 슈베르트의 즉흥곡도 1번부터 4번까지 모두 언급된다. 빡빡한 연주 스케쥴에 묻혀 사는 피아니스트의 삶의 단편을 조금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연주자들이 실은, 밥먹는 시간 빼고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하는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아서 좀 의아했다.
주인공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은 아버지의 유령!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려나? 싶더니, 아버지의 엉뚱한 요구는 아버지가 못 다한 사랑(그것도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을 살아있는 아들에게 이룰 수 있게 부탁하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살고, 빡빡한 연주 스케쥴에 묻힌 피아니스트 아들은 아버지의 엉뚱한 부탁으로 며칠 내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가 급박하면서도 리듬감있게 진행된다.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점은 바로 유럽식 대화이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화, 어머니와 아들과의 대화, 그리고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간의 대화이다. 전에 보았던 일본 소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화 방식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장황하지만, 유머가 있고, 외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직설적인 대화!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원래 원작자가 쓴 말의 뉘앙스를 온전히 느끼지는 못했겠지만, 번역이 매끄러워, 우리말 같으면서도 유럽식 리듬감과 정서가 느껴지는 대화를 엿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
자식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 아버지가 사랑했던 그녀를 자식은 어떻게 보게 되는가?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미묘한 사람들간의 만남과 관계 맺음, 거기에서 오는 섬세한 감정들에 같이 동화되기도 하고, 안타까움과 환호를 같이 느끼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서 마르크 레비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아뿔싸! 작년엔가 읽었던 『그녀, 클로이』도 레비의 작품이었다. 뉴욕 맨하탄의 오래된 고급 아파트와 거기에 사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주변 풍경이 살아 움직이듯 묘사가 되어 있어서 나는 당연히 미국 작가의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 시절 극장에 안 갔다고. 맙소사.. 지정 좌석제가 뭐가 문제라고.... 멀티플렉스로 바뀌기 전이었지, 아마. 단성사, 대한극장, 명보 등... 서울에서 안 산 내가 더 많이 갔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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