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아 우리글닷컴에서 개발한 소위 지능형 한글 글꼴
이라는 것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고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글꼴을 만드는 작업은 고도의 기술력과 프로그래밍, 디자인, 노력, 비용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글닷컴에서 개발한 결과물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 노력에 꼬투리를 잡으려는 의도는 아니며, 전문가가 아닌 일반 사용자로서 느낀 몇 가지 아쉬움, 신문 기사의 오류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제가 틀린 내용을 주장한다면 댓글로 반박해주십시오.
첫째, 서명덕 기자님의 기사에는 약간 오류가 있습니다. 기존에 윈도우즈 사용자들이 쓰던 굴림, 돋움 글꼴은 비트맵 글꼴이 아니라 트루타입 글꼴이지만, 작은 크기에서 트루타입 힌팅(hinting)이나 래스터라이징(rasterizing) 기술이 떨어질 때에 만들었던 글꼴이라 가독성을 임의로 높이기 위해 글꼴 크기마다 비트맵으로 디자인을 해놓은 것 뿐입니다.
둘째, 화면용 글꼴과 인쇄용 글꼴의 이원화는 비단 우리 나라에서만 생긴 문제는 아닙니다. 로마자 알파벳을 쓰는 서구 문화권에서도 아직까지 화면용 글꼴로는 고딕 계열(sans-serif)을 더 많이 사용하고, 인쇄시에는 명조 계열(serif)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그것은 모니터와 글꼴의 품질이 아무리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명조 계열을 종이에서만큼 깨끗하게 표시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것을 그냥 당연하거나 익숙하게 생각하기도 하구요.
셋째, 명조 계열 글꼴의 가독성이 더 좋다는 증거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김태진(1991)의 실험 결과에서도 명조 계열 글꼴과 고딕 계열 글꼴의 지각적 반응 속도의 차이는 거의 없었고, 당시 유행하던 탈네모꼴 글꼴보다 네모꼴 글꼴을 더 쉽게 지각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어떤 연구가 되었는지 찾아보지 않아서 추가적인 어떤 증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증거가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넷째, 인터넷 한글 활자의 공급이 마이크로소프트사에만 의존하고 있다면서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인터넷 활자의 제작
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하필이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작동하는 비표준 독점 기술인 액티브 엑스를 사용해야만 글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다른 브라우저 사용자들은 유료로 돈을 주고 글꼴을 사야 하겠지요.
다섯째, VTT(Visual TrueType)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폰트 개발 도구로 윈도우즈 XP에서부터 도입된 소위 클리어타입(ClearType)
이라는 발전된 힌팅 기술을 적용해 글꼴을 개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툴을 이용했다는 것과, 한글 글꼴폭을 가변적으로 했다는 것만으로 지능형 한글 시스템
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좀 과장인 것 같습니다. 가변폭 글꼴은 이미 1990년대에 빨래줄 글꼴이 나오면서 등장을 했고, 글자의 폭이 다르기 때문에 초기에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처리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었지만 옛날의 이야기입니다. 디자인 면에서는 완전히 똑같은 폭에 모든 글자를 가두지는 않고, 그렇다고 기존의 빨래꼴 글꼴처럼 심한 변화를 주지는 않았네요. 그런데 "이" 모음이 있는 글꼴이 "오"나 "우" 모음 글꼴보다 확연하게 좁게 한 것이 개인적으론 아주 자연스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한글 글꼴에서 글꼴의 특성에 따라 시각적으로 간격을 일정하게 조정해주는 커닝(kerning)이 적용된 글꼴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참고: 영문 글꼴들은 보통 글자에 따라 폭이 넓거나 좁은 대신, 글자들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글자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특수한 경우(예를 들면 코딩할 때 쓰는 글꼴이나, 구식 타자기 글꼴)에는 글자의 폭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대신, 세리프(serif)를 크고 과장되게 그려서 여전히 글자간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지요.
여섯째, 클리어타입이 모든 모니터에서 다 깨끗하게 잘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저같이 구형 LCD 모니터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힌팅을 적용한 글꼴들이 상당히 많이 퍼져서 흐릿하게 보이거나 색번짐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윈도우즈 비스타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맑은 고딕
글꼴에 똑같이 클리어타입을 적용해서 봐도, 고급 노트북 화면에서 볼 때와 구형 아날로그 연결 방식의 LCD 모니터에서 볼 때 상당히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구형 모니터에서는 아직도 클리어타입을 비롯한 모든 힌팅 옵션을 다 끄고, 그냥 얇고 또렷한 굴림을 사용합니다. 맑은 고딕을 강제로 적용한데다가 전경과 배경색의 대비도 흐릿하게 해놓은 웹 페이지를 윈도우즈 환경에서 구형 모니터로 보고 있으면 상당히 짜증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웹 페이지에서 강제로 클리어타입을 적용하도록 해서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빼앗아갈 때에 불편을 느끼는 사용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웹에서의 여러 가지 글꼴 사용에 앞서, 보편적인 정보 전달 원리를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웹을 종이 매체와 똑같이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종이 매체에 한 번 찍힌 글자는 그대로 고정되지만, 웹에 찍힌 글자를 모두가 똑같은 환경에서 보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모니터의 종류도 다르며, 모두가 윈도우즈를 사용하지도,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글자를 시각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음성으로 웹 페이지를 듣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해당 글꼴을 똑같이 볼 수는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글꼴에 의존적인 디자인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글닷컴 홈페이지에는 모든 사람이 윈도우즈 환경이며,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해당 글꼴을 볼 수 있다고 가정하고, 게다가 글꼴을 특별히 키우거나 줄이지 않고 기본값으로만 본다고 가정하고 페이지를 디자인하였습니다. 따라서 위의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모든 사람들은 이상하게 어긋나거나 해독이 어려운 텍스트들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직도 웹이나 컴퓨터 화면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고정된 폭을 가진 종이 위에 타자기로 글자를 찍던 시절에 사용하던 줄바꿈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워드프로세서나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이나, 웹 페이지를 작성할 때에 흔히 범하는 실수입니다.
너무 부정적인 의견만 내세운 것 같습니다. 천편일률적이고 멋도 없는 굴림 글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이 그래픽으로 글자를 그리던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인 글꼴이 많아지고 보급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글꼴도 보편적인 기술 환경에서 보편적으로 활용 가능하도록 보급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글꼴을 써서 멋스럽게 웹 페이지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 전달이라는 원래의 의도가 어떤 환경에서도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좋은 글이 있어야 부족한 제 글을 읽는 분들에게 가이드가 될 것 같습니다.^^ 전문적인 통찰이 담긴 내용 잘 읽었습니다. 읽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답글삭제너무 좋은 글입니다. 나름 폰트에 대한 조금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더 심도깊은 글에 고마움과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답글삭제좋은 글을 트랙백으로 연결해 주셔서 기쁩니다.
많은 분들이 폰트에 대한 개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글닷컴의 글꼴을 감상하였고 상당히 훌륭한 품질을 구현해낸데에는 많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답글삭제하지만 신승식님이 본문에서 언급하신 내용도 허투루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쟁점들이라는 데에는 공감합니다.
난생 처음 돈을 주고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한 글꼴이긴 한데(9포인트 크기에서 우리바탕체의 품질이 아주 훌륭합니다) 홈페이지에서는 웹폰트로 파는 방식을 기본으로 삼고 계시는듯 해서 아쉽습니다.
XP부터 클리어타입을 적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비스타나 리눅스를 쓰다가 XP를 사용할 경우엔 작은 크기의 글씨를 볼 때 비트맵 폰트가 지원되지 않는 폰트를 적용하면 차마 봐주기 어려울 정도던데요... 그래서인지 비스타의 기본폰트를 XP에 적용하더라도 번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죠...
답글삭제물론 지긋지긋한 MS폰트들(게다가 따지고 보면 우리의 명조체라는 것도 일본에서 넘어왔으니까요...)을 대체하는 글꼴을 개발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폰트 다듬기 기술이 떨어지는 XP에서 폰트 좀 깔끔하게 보자고 액티브X를 사용하는 것도 좀 문제가 있어보이는군요...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웹사이트는 ctrl++만 해도 사정없이 틀이 붕괴되는게 안타까울 따름이죠...
불멸의 사학도님, 네 말씀대로 XP에서 폰트 다듬기 기술이 상당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리눅스 데스크톱에서만큼 세밀하게 조정이 안 되어 똑같은 폰트가 덜 예쁘게 나오더군요.
답글삭제떡이떡이님, 마루님, 마잇님, 아무튼 우리글닷컴에서 사람들이 현재 쓰는 글꼴이 문제가 있나보다라고 상기시키고 그것을 개선하려고 한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네요.
님 지나가다 글읽고 씁니다.
답글삭제위의 글들중에 셋째의 가독성부분에 대해서 퍼왔습니다
"안상수는 중고딕체와 중명조체로 조판된 각 도서 재를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명조체가 고딕체보다 6.7% 독서속도가 높았다"
출처 : http://www.sandoll.co.kr/
1991년에 결과로 2007년의 인쇄매체와 모니터환경의 가독성을 말할순 없죠^^
안녕하세요. 폰트에 관련해서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답글삭제그레그신님께서 써놓으신 글을 보고 공부가 많이 되네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그레그신님이 알고있는 지식이
조금 상충되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덧글을 씁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서체, 굴림돋움궁서바탕 등 MS가 지정해준 기본서체는
모두 트루타입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굴림 등에는 비트맵이 강제로 들어가있는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레그신님께서 '디자인을 해놓은 것뿐' 이라고 하셨는데,
비트맵으로 디자인을 한 것이 맞긴 하지만 그 비트맵이 글꼴 자체에서
래스터라이즈되서 나오는 비트맵이 아니라, 강제로 비트맵을 집어넣었다는 것을 보다
정확하게 짚어주셨음 좋겠습니다. 신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 당시 트루타입 힌팅이나 래스터라이징 기술이 떨어질 때에 만들었던 글꼴이라서 그런 힌팅 기술대신 비트맵을 집어넣었던 것이지요.
물론 이런 지적으로 뭐 큰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쓰고있는 글꼴이, 언제적에 만들어져있는 폰트인지 사람들은 알아야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또한, 화면용글꼴과 인쇄용글꼴의 이원화라고 하셨는데, 서양에서는 클리어타입의 발명?으로 이미 세리프체도 화면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끔씩 뉴욕타임즈와 르몽드에 들어가서 보는데, 거기서도 세리프로 지면이 아니고 모니터면을 형성하고 있습니당~~~
확실히 거기 영문서체는 클리어타입을 키고 보면 무지 이쁘더군요..
그리고 화면과 인쇄의 차이가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일 것이라고 생각하시진 않으시겠지요?
지금은 하루만 지나도 세상이 달라져있는 시기입니다.
어제 뉴스에도 lcd를 대체할수 있는 기술 AM OLED가 곧 양산에 들어간다고 하던데,
점점 기술을 무한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모니터화면 기술 또한 나중엔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여, 진짜로 모니터에서 책과 똑같은 화면을 볼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말이죠. 폰트도 발전을 해야된다고 봅니다.
지금 여기에 언급하신 우리글닷컴의 폰트..아주 긍정적인 시도라고 봐요.
어쩌면 이것이 나중에 일어날 글꼴의 큰 혁명의 시발점이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솔직히 폰트업계들, 모니터에서 볼수 있는 폰트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연구를 한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 연구를 해왔다면 어찌, 이런 이름도 처음들어보는 회사에게 선두를 빼앗깁니까?
지금의 난다~ 하는 폰트업계들은 정말 속상하게, 이상한 그림이 들어있는 웹폰트만
만들어대고...허어...
저는 웹폰트가 그런 비트맵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만 알고있었는데,
이곳 우리글닷컴의 웹폰트는 그게 아닌것 같더라구요..
무언가 새로운 시도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아 좋습니다.
음 글고 거기서 다운로드폰트도 금년안으로 무료배포한다고 하니,, 기다려봐야겠네요~
지나가다가님, 아 명조체를 읽는 속도가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궁금하네요. 독서 속도라는 게 무엇인지... 독서라는 것은 글자의 지각(perception)과 텍스트의 인지(cognition) 또는 이해(understanding)를 포함하는 개념인데 지각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 이후 단계에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는 좀 의문스럽습니다.
답글삭제j양님, 저도 굴림 글꼴의 비트맵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트루타입으로 표현된 것과 비트맵 글꼴과의 일관성이 떨어지는 문제이겠지요. 그리고 말 그대로 구닥다리 글꼴이기 때문에 바뀔 때가 한참 지났지요.
말씀하신대로 기존의 비트맵 웹폰트와는 차원이 다른 정말 잘 된 글꼴이 나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 세리프 글꼴이 더 널리 쓰이겠네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저도 지나가다 가져온 자료라,, 신승식님이 의문을 가지시는 부분이 어떨지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답글삭제저는 세리프가 있는 글자가 그 세리프로 인해 시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다음 글자로 가게 되어 글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작은 포인트로 갈수록 산세리프보다는 세리프가 세리프로 인해 글자의 판별, 지각이 더 빨리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