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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5

영어 듣기와 주의 집중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EBS 라디오를 틀어놓고 귀가 트이는 영어, 조오제의 토익 리스닝, 이보영의 포켓 잉글리시 등을 듣는다. 그러나 그렇게 듣는 것들은 모두 면도하면서, 샤워하면서, 옷 입으면서 흘려듣는 것들이므로 사실 건지는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그 많은 영어들 사이에 끼어있는 한국말들은 귀에 쏙쏙 잘 들어오는데 영어는 아주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복이 중요하다고 해서 주말에 재방송을 들어봐도 (그 때에도 딴 짓하면서 건성으로 듣는 편이라) 역시 한국말 해설은 두 번 반복하니 완전히 외우겠는데 외국어는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오늘 해외에서 온 교육생들과 식사를 같이 하였다. 식사하는 도중에 CNN 뉴스가 나왔다. 나는 아주 주의집중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밥먹던 것을 잊고 들으면 겨우 몇 퍼센트 건질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밥 먹으면서 한 눈으로 힐끗힐끗 보고, 밥도 맛있게 먹으면서, 때로는 나와 잡담도 하면서 뉴스를 본 것 같던데 뉴스에서 방금 뭐라고 했냐고 물어보니까, 자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예전에 회사에서 그 회사 사장님이 영어에 한이 맺힌 이야기를 종종 하셨다. 그러면서 자기는 나이도 아주 많지만 아직도 영어 테이프를 잠잘 때에 틀어놓고 잔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뭔가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겠냐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아침에 샤워하면서 듣는 영어, 밤에 잠잘 때 틀어놓는 영어, 낮에 길거리에서 딴생각 잔뜩 하면서 듣는 영어, 극성스러운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영어에 질리게 만들도록 항상 틀어놓는 영어 TV 방송, 이런 것들이 영어 듣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아침에 나오는 토익 방송 중에 간혹가다 문제는 건성으로 듣다가 답은 또렷이 들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답은 알쏭달쏭한데 알고 보면 정말 쉬운 문제였다. 그런데 왜 들리지 않았을까? 그것은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주의 집중해서 영어를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제1언어에 비해 외국어를 이해하려면 훨씬 많은 자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의를 주지 않고 흘려서 듣는 영어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특히 언어 발달의 결정적 시기가 훨씬 지난 성인들에게 말이다. 심리학적으로 실험해봐야 할 재미있는 주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거의 효과가 없거나 또는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 아직 주의를 주지 않고 자동적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먼 외국어 듣기 영역에서 주의를 주지 않고 흘려듣기 시작하면, 외국어는 일반 잡음, 배경 소리로 처리하는 기제가 점점 발달하지는 않을까?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는 이유는, 생활 속에서 대화를 하려면 (그것은 생존에 필요하므로) 자연스럽게 주의를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운전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말을 시키거나 라디오를 틀어놓기만 해도 운전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며, 온 힘을 운전대에 집중해 꽉 쥐다보면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 나중에 손바닥이 얼얼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주의를 다 쏟아서 한 가지 과제를 반복하게 되면, 나중에는 점점 더 적은 주의를 쏟더라도 자동화되어 그 과제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영어도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주의를 쏟지 않고 그냥 틀어놓으면 잘 들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너무 순진한 희망 사항이 아닐까?

그래도 설마 부정적인 효과가 있겠어? 1%라도 뭔가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내일도 나는 똑같은 행동을 할지도 모르지만...



댓글 11개:

  1. 꾸준함 외에 답은 없겠죠?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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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출퇴근시 항상 esl podcast 를 듣는데 다른생각을 할때는 한 단어도 들리지 않다가 집중하면 몇 단어는 건지겠더군요 ^^ 그러면서 다음날이면 또 다른생각을 하며 틀어놓기만하니 한 단어도 못 건지는날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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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제 경우는 영어는 아니고 일본어의 경우입니다.

    예전 처음 일본에 와서 일본어 배울때 이해하던 못하던 텔레비젼 은 꼭 켜놓고 지냈습니다. 텔레비젼만 계속 보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반복해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단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그렇게 익힌 단어들이 나중에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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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Hooney님, 꾸준히 하세요. 참 그리고 최근에 취업하신 것 축하드려요.

    likejazz님 단어를 건지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단 듣기 실력 향상은 어렵더라구요.

    nmind님, 반갑습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가 귀에 들리다니... 저도 그런 경지에 한 번 가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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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이것에 대한 정확한 솔루션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저는 시큐어컴퓨팅 환경에 대한 영어로 된 전화 인터뷰를 듣고 있는데, 지금 걔네들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대충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영어듣기에서 매우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소귀에 경읽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의미하게 들리지도 않는 말을 백날 들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효과가 1% 될까말까... 시간 낭비죠. 잡음일 뿐입니다.



    영어를 들으실 때는 항상 정답을 알고 들어야 합니다. 들은 내용이 토씨 하나까지 틀리지 않게 다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아주 세밀하게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자면, 필연적으로 듣는 양이 매우 적죠. 예를 들어 10분 분량을 1달 내내 듣는 수준이겠죠.



    효과요? 놀랍죠. 말씀 드렸죠? 지금 제가 듣고 있는 전화 인터뷰는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되고 있는데, 매우 잘 들립니다.



    만약 듣기만 글쓰지 않고 듣기만 한다면, 거의 토씨하나까지 다 들어 낼 수 있겠죠... 왜요? 그렇게 하려고 훈련했기 때문이죠.



    절대 '소귀에 경읽기'식 듣기 공부는 하지 마세요. 적은 양을 토씨하나까지 샅샅이 다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세요. 받아 쓸 수 있을 때까지...


    http://blog.daum.net/effort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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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흐름님, 맞는 말씀입니다. 소귀에 경읽기는 도움이 안 되더군요. 그런데, 10분 분량을 한 달 동안 듣고 넘어가기엔 현실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겨우 그 정도 소화하는 것으론 영어가 너무 부족하니까, 더 많은 것을 닥치는대로 들으려고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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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Anonymous4/03/2008

    웹접근성 전문교육을 수강하다가 님의 블로그를 알게된 공무원입니다. 일을 떠나 교육수강 중에 님의 블로그를 보고 신선한 느낌을 받고 갑니다. 생각이 많아졌다고나 할까요? 열심히 사시는 거 같아 한 수 배우고 가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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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Anonymous님, 그러시군요.^^ 열심히 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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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낙타9/09/2008

    유튜브로 영어공부하는 방법을 오려주시면 안될까요?
    http://fun-english.tistory.com 에서 하기는 하는데 너무 어려워서... -_- 좀 쉬운 방법으로 할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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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pepper4/09/2009

    저도 매우 동감합니다. 그냥 들으면 일종의 방어기재처럼 배경음악으로 전환하려는게 스스로 느껴진달까요, 의미를 알려고 노력하면서 듣지 않으면 듣기는 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흥미있는거 보라는거긴 하더군요.

    그냥 들으면 느는건, 딱 하나, 이토네이션이 좀 익숙해집니다. 다만 그걸 위해서는 차라리 크게 읽고 따라하기를 하는게 날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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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pepper님. 인터네이션 말씀하시는 거죠? 요즘 영어에서 제일 덜 중요한 게 발음이나 억양이라더군요. 그래서 토익 스피킹 같은 시험에서는 발음은 거의 채점하지 않는답니다. 저는 발음 하나만 자신있는데...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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