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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9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림이 있는 동화책, 《책과 노니는 집》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글. 김동성 그림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읽어보고, 내용과 단어가 너무 어렵다고 하여, 도움을 주기 위해 저도 읽어보았습니다. 제9회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니 어떤 작품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 후기 천주학이 학문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에 서울입니다. 주인공 장이는 책을 필사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아버지와 살고 있는 어린 소년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죽도록 맞아, 소년은 세상에 홀로 남겨질 것을 두려워합니다.

죄 없는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모진 놈들......

아버지에게 일감을 주었던 책방 주인 최 서쾌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보편적인 사람의 상식과 정서에서 아버지는 죄 없는 사람이었고, 한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은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해 탄식하는 것이지요. 그 시대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국가가 보았을 때 죄가 됩니다. 그러나 통치자가 만들어놓은 합법의 테두리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설사, 그 시대 기준으로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죽을만큼 맞는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죄가 있다고 신체적인 형벌을 주는 일, 그리고 사람의 목숨까지 국가가 빼앗아가는 일이, 현대 사회에서는 이제 많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 걸까요.

국가의 정책, 지배자의 통치 방향과 다르다는 이유로 조선 말기에 천주학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었다고 의심받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학을 접한 사람들은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엄격하게 계급이 구분되어 날 때부터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구분되는 신분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를 따라가지 못한 국가는 가혹한 탄압을 행합니다. 왕조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거쳐서 민주 공화국이 되고, 절대적인 통치자, 왕에 의한 지배에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사회가 된 우리 나라! 정말 많이 진보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정의, 평등, 인권, 사상의 자유 등 인간의 이상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법 통치자에 의해 잘못 휘둘러지는 경우는 없는지도 생각해봅니다. 

혼자였던 장이를 도와주는 사람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최 서쾌의 도움으로 필사한 책 배달을 하게 된 소년, 장이. 이번에는 동네 불량배인 허궁제비에게 큰 괴롭힘을 당하고 난처한 처지에 빠집니다. 가족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장이는 혼자서 끙끙대며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장이는 고립무원의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장이에게 일터를 주었던 최 서쾌, 도리원에서 만난 낙심이, 청지기 아저씨, 미적 아씨, 지물포 주인 오씨 등이 모두 합심하여 도움을 주었습니다! 최 서쾌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감당할 수 없거든 도움을 청하란 얘기다....... 휴우.

도움을 제공한 장이

관아에서 다시 천주학 관련자를 대대적으로 색출하여 잡아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그동안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장이를 따뜻하게 대해주었던 홍 교리에게 장이가 큰 도움을 제공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외로운 현대인들은 각자 도생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장이는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행복을 가졌습니다. 국가 폭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과거 왕조 시대로 결코 돌아가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주고 외면하지 않는 것이 조상들의 보편적인 정서였다면, 현대인으로서 그런 옛날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마무리

소년 장이의 성장 소설일 수도 있고, 조선 후기의 역사 소설일 수도 있습니다. 장이라는 순진한 어린이의 시선을 따라 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지면서, 책읽기를 권장하는 어린이 문학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성격을 다 갖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과함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책을 많이 보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역사가 너무 도드라지지도 않으며,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알차게 꽉 차 있지만,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각자의 생각과 느낌,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아주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와 한 몸이 된 듯한, 아름답고 따스한 삽화가 없었다면, 책읽기의 즐거움이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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